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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씨가 국제 의용군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외교부의 만류에도 우크라이나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가 무엇을 지키려는 건지, 왜 싸우려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근씨의 SNS에 올라온 출사표(?)는 비장미 말고는 다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 반면 예비역 중사 이승용씨가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통해 의용군에 지원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꼭 총을 들지 않더라도, 전후 봉사활동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가 결심을 굳힌 계기가 2월28일에 열린 기자회견 참석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기자회견은 내가 일하는 전쟁없는세상이 공동주최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염원하는 그의 진심은 너무나 절절했지만 의용군이라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도 짐작이 된다. 그의 결심에 전쟁없는세상이 일조한 것만 같아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스스로 저항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목숨 건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을 전쟁터 밖에서 왈가왈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우리 또한 우리의 연대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반드시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서는 군사적 저항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비폭력 저항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참여하는 의용군, 정부의 파병이나 무기 지원 등이 군사적 지원에 해당한다. 이러한 군사적 지원은 당장 러시아군과 전투를 하는 데는 유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방을 군사력으로 압도하지 않는 한 전투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고 전쟁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쟁이 격해지고 길어질수록 피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러시아 혹은 주변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어만 간다.

반면 군수산업체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의 소총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의료품 등 구호물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비폭력적인 시민 저항은 총칼 앞에서 무기력하거나 한가한 이야기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로 치부되기 쉽다. 과연 그럴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했던 덴마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 운동 때 소련군에 대항했던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의 비폭력 시민 저항은 한국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탱크와 총으로 싸우는 대신 침략 정부에 협조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고, 공무원들은 태업을 했다. 노동자들이 숨겨주고 공무원들이 일부러 색출작업을 대충했기 때문에 덴마크의 유대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이 살아남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은 수개월 동안 꼭두각시 정권조차 세우지 못했다. 침략자들은 군사적 점령엔 성공했지만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에 막혀 ‘통치’를 할 수는 없었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런 비폭력 시민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평화운동단체 ‘우크라이나 평화주의자 무브먼트’의 사무국장 유리 셸리아첸코에 따르면 어느 마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속아 전쟁터로 내몰린 러시아 군인들을 설득해서 마을에서 나가게 했고, 도로 표지판을 없애거나 바꿔 러시아 군대의 작전을 훼방 놓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저항에 발 맞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서는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 수천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과연 전쟁반대를 외치는 것만으로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반전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회고록에서 미국 내 반전 운동 때문에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음을 고백했다. 히틀러조차도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는 등 반전 여론을 신경 썼다. 제 아무리 독재자라도 사람들이 동조하거나 협조해주지 않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정치인,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군인이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실현하는 힘은 시민들에게 있다. 시민들의 저항을 무릅쓰고 치른 전쟁은 권력의 몰락을 가져온다. 푸틴은 평화를 이길 수 없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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