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뜻하는 어스(Earth)와 시간을 의미하는 아워(Hour)를 합친 ‘어스아워’는 세계자연기금(WWF)이 벌이는 캠페인으로, 2007년 호주에서 시작했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더 이상 지구를 파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어스아워의 상징은 ‘한 시간 소등’이다. 불 꺼진 지구를 통해 우리가 기후변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지구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매년 190여개 국가, 2만여개의 랜드마크,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어스아워에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여년 동안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은 크게 높아졌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은 한참 부족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이 채택된 이후 2021년에 이르러서야 각국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라는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현재의 수준으로는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1.5도 제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6차 보고서를 통해 2021년에서 2040년 사이 지구가 1.5도 이상 뜨거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보다 더 신속하게 대응을 한다면 이 시간을 늦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후과학보다 앞서 자연은 수많은 경고를 보내왔다. 폭염과 홍수 등 극한 기후 현상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고, 그 결과 지난 10년은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됐다. 기후변화와 자연 파괴로 야생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척추동물 개체군은 평균 68% 감소했다. 더욱 분명한 자연의 경고는 바로 코로나19의 출현이다.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야생 동식물과 사람의 접점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인수공통감염병이 증가하는 것이다. 자연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우리는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이번 어스아워의 주제는 ‘우리가 만드는 미래(Shape Our Future)’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 기회를 앞두고 있다. 국제사회는 사상 처음으로 해양 플라스틱 오염을 막는 법적 규제를 만들기로 합의했고, 자연 보전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인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채택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결정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이행 방안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는 어스아워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날이 아니라 자연의 회복을 의미하는 기념일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홍윤희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