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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지닌 가장 큰 취약점은 불확실성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매각이 발표된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3년을 보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지난 9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이 지연된 것은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와 노조, 지역 정치인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양 조선사의 기업결합은 “현대중공업에서 유럽연합(EU) 경쟁당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면서 “그러나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조선사의 합병인 만큼 심사와 발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대우조선 노조가 기업결합을 반대하는 압박을 가해서 “EU 심사 결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기업결합 심사가 3년이 되어가는데 결론이 안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언제 결론을 내릴지 종결 시점을 명확히 정하지 않은 것은 더 큰 문제다. 더 나아가 매각의 결론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EU 경쟁당국의 합병 심사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만, 실상은 이 회장의 주장과 달리 인수 예정자인 현대중공업지주가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현재 유럽 경쟁총국 사이트를 보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이 ‘유럽 이사회 기업결합 규칙 제11조 3항에 따라 종결이 지연되고 있다’고 나온다. 기업결합 규칙 제11조 3항은 기업결합 회사에 대한 정보 요청에 관한 것이다. 유럽 경쟁총국이 요청한 정보가 LNG선종 독점 해소 방안임은 언론을 통해 수차례 나왔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이 독점 해소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채 3년을 보냈다. 한국 조선산업 조건을 보면 일부러 사업을 접지 않는 이상 LNG선종 독점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심사가 끝없이 지연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2019년 1월 맺은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지주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계약을 보면 거래 지연에 따른 책임 조항도 없고, 거래 종결 기한도 없다. 질질 끈다고 해서 현대중공업이 손해 볼 일은 없는 계약이다. 산업은행이 계약을 맺을 때 조건을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는 증거다. 결국 이 계약의 거래 지연 책임은 노조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지주에 있다.
사실 지연으로 현대중공업은 이득도 본다. 대우조선해양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대우조선의 손실은 명확하고, 그 반사이익은 모두 경쟁사인 현대중공업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2021년 LNG선 수주 상황은 그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9월15일 현재까지 한국조선해양은 25척을 수주한 반면, LNG선 강자인 대우조선해양은 불과 6척을 수주했을 뿐이다. 여러모로 특혜이다
올해 1월 유럽의 대형 크루즈 조선업체 아틀란티크와 피칸테리의 기업결합이 무산됐다. 경쟁 심사 통과 여부가 명확하지 않았고, 합병이 과연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에 기업결합이 무산된 것이다. 이 두 회사보다 덩치가 큰 한국 양대 조선사의 결합은 더 어려울 것이다. 산업은행이 빨리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불확실성도 없애고 국민 세금도 아낄 수 있다.
송덕용 공인회계사
오피니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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