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일로’는 ‘곡식을 저장하는 구덩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시로스(siros)’에서 유래한 단어로 독립된 형태의 저장용 구조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조직 경영에 있어 사일로는 서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협업 자체를 꺼리는 현상으로 그 의미가 변모되어, 분업화와 수직적인 보고·성과체계가 도입되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부서 간 경쟁, 조직 이기주의 등에 따라 발생하는 ‘원치 않는 부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과거 이러한 사일로 현상이 단순 조직 내 소통을 저해하는 골칫거리 수준에 그쳤다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촉발된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대격변의 흐름이 코로나19로 가속화되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현시점, 특히 데이터 분야의 사일로 현상은 개인·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언급되고 있다. 글로벌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인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뮬소프트(MuleSoft)는 올해 초 ‘2022 연결성 벤치마크’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의 핵심은 디지털 혁신이며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를 바로 ‘데이터 사일로’로 지목하였다.

우리나라는 2018년 데이터 경제로의 원년 선포 이후, 여러 부처가 금융, 의료, 공공 등 소관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다양한 데이터 활성화 전략을 80개 이상 수립·추진해왔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개방,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운영 등 데이터 활용 활성화에 2조3000억원(2020~2022년) 이상을 투자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지난해 말 기준 23조원의 데이터 시장 규모로 이어졌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사일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기업과 민간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간 정부 주도하에 다양한 플랫폼이 구축되었으나 개별적인 운영으로 서로 연계가 되지 않아 데이터 탐색·활용이 어려운 문제, 분야별로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표준화로 이종 간 데이터의 융합·활용이 저해되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일로 문제를 해결하고 통합된 활용으로 나아감에 있어 중요한 기본 전제가 바로 ‘안전’이라는 점도 강조되어 왔다. 프라이버시·개인정보 침해의 방지와 데이터 센터 등 중요 시설의 보호 없이는 데이터의 연계와 활용이 지속될 수 없다. 일례로 지난 9월 구글·메타의 개인정보 불법수집에 대해 1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나 최근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 장애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러한 업계의 숙원을 해결하고자 지난 4월 데이터산업법이 시행되고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운영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 법은 연계와 통합 그리고 안전한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 민간의 자생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기본 법제로 민간·공공의 다양한 플랫폼을 모두 연계한 통합 인프라, 국가 차원의 데이터 표준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며 개인정보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등 여러 보호 법령과의 조화를 골자로 한다. 그리고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는 국가 데이터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서 보호와 활용의 다양한 정책들이 통합된 시각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지원하는 핵심 추진체계이다.

데이터 산업법과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의 시대적 사명은 명확하다. 부처별 분야별로 나누어진 데이터 생산·관리를 국가차원에서 혁신함으로써 사일로를 지속 타파해 나가고 이를 통해 데이터가 필요한 곳에 막힘없이 공급되며 안전하게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14일 출범한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는 개인정보법·신용정보법 등으로 이원화된 가명정보 제도의 통일성을 제고하고 마이데이터 제도의 전 분야 통합적 활용을 추진키로 하는 등, 서로 다른 제도와 불분명한 규정을 정비하고 안전한 활용을 촉진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논의과정에서 민간위원들은 부처·기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러한 정비를 추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달 21일 ‘디지털 자유시민을 통한 연대’라는 제목의 ‘뉴욕구상’과 그 후속조치인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에서도 통합과 보호의 가치가 강조되며 계층과 영역을 뛰어넘는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정의로운 활용이 핵심으로 언급되었다.

데이터 산업법과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의 향후 발자취는 데이터 시장 50조원 시대 개막이라는 실질적인 성과 창출과 함께 데이터 기반 혁신강국 도약, 그리고 안전한 행복사회 구현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소속된 부서와 종사 분야, 그리고 지위를 초월한 범국가적인 협업과 소통을 이뤄 나가야 한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