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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신해년, 조선시대 정조는 ‘통공(通共)’을 단행한다. 당시 상업 활동을 일부에게 독점적으로 허락한 규제를 없애, 도성 내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인구가 늘고 농업과 수공업이 활발해지면서, 시전상인들의 독점판매로는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정조는 시대와 환경에 맞지 않는 규제를 고쳐 백성의 삶을 돌보고자 했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과거에 머물거나 정지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규제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게 개발되는 혁신제품의 혜택을 누리려면 변화와 도전에 대한 적극적인 응전이 필요하다.

국민의 삶에 밀접한 식품·의약품 분야에도 혁신 신기술이 끊임없이 도입되고 있다. 특히 바이오헬스, 푸드테크 등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이 이어지고 있고, 세계 각국은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의 주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11일 식의약 분야의 규제를 시대 변화에 맞춰 혁신하기 위한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혁신제품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추진하는 과제다.

시대와 환경에 맞지 않고 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한다. 세포 배양 등 신기술을 적용한 식품 원료를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거나, 자가 치료용 대마 성분 의약품을 휴대하고 출입국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신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지원하는 과제도 있다. 디지털헬스기기와 같은 신기술 분야는 개발 단계부터 허가를 거쳐 제품화하기까지 새로운 규제를 필요로 한다. 성능 좋은 자율주행차가 개발되더라도 길이 없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디지털헬스기기에 대한 임상평가 기준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제품 특성에 맞는 맞춤형 허가 절차를 만들어 빠른 시장 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규제과학 선도국이 되어 국내 개발 식품, 의약품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국내 안내서를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다듬고, 국내 허가가 곧 글로벌 허가로 이어지도록 지원할 것이다. 

또한 8월30일 출범한 ‘글로벌 식의약 정책 전략추진단’을 활용해 국제 통상 이슈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신해통공 시행 후의 여러 역사 문헌에는 ‘물가가 전보다 싸졌으니 개혁이 실효가 있다’ ‘장작값이 옛날로 돌아갔다’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기록돼 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추진한 신해통공 조치가 조선 후기 백성의 삶과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됐던 것처럼, 식의약 규제혁신이 국민의 건강과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신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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