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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사망 사고는 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에 뇌동맥류 파열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뇌혈관 외과 의사가 두 명밖에 없어서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 필수 의료 부족 상황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부족한 의사 수를 거론하며 “기승전-의사증원”으로, 의료계는 필수 의료 수가 문제를 거론하며 “기승전-수가”로 대응하고 있다. 의료가 시장논리에 맡겨진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온 우리나라에서는 양쪽의 오래된 주장을 공회전할 뿐인 무위한 해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공공 의료기관이 전체 의료의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지만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공공 의료기관의 설립에 관한 예비타당성조사조차 승인한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이 정치인들이 시장 논리와 인력 착취에 기반해서 최대의 효율로 돌아가는 병원 사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일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징한 팩트이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의료를 개선하기 위한 의지가 없다는 비관적인 현실을 인정한 채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선 ‘서울아산병원의 뇌혈관 외과 의사가 몇 명이어야 노동법을 어기지 않고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은 산술적으로 도출된다. 대한민국 법정 주당 근무시간 52시간을 24시간 돌아가는 병원 시스템에 대입하면 1주일을 빼곡히 커버하기 위해서는 전문의 3.2명이 필요하다. 물론 야간 근무와 주일 휴무를 모두 무시한 계산이다. 주 업무 시간인 낮 시간 동안에는 한 명만 진료를 하면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복수의 인원이 더 필요하다. 여기에 대학병원 교수들의 연간 휴가와 학회 참가 일정으로 인한 휴무를 고려한다면 최소한 6명 정도의 뇌혈관 외과 의사가 있어야 1년 365일 24시간 수술을 할 수 있다.
아무리 대형 병원이라도 이것은 현실적으로 유지 가능한 인원이 아니다. 사실 서울아산병원에 뇌혈관 외과 의사가 두 명이라는 것은 그 병원의 오랜 노하우에서 비롯된 최대의 경영 효율을 담보하는 의사 수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서울의 대형 병원에 이렇게 24시간 가동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전국의 환자들이 응급수술을 위해 서울로 와야 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년 365일을 커버하는 인력을 유지했을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수요 부족(응급수술은 예측이 불가능하다)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생기는 비용 손실을 국가가 보완해줄 수 있는지도 질문해야 한다. 물론 정부는 안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첫해에 민간 병원을 코로나19 병상으로 동원한 후 환자가 감소하자 바로 비용 지불을 중단하고 지정 취소를 했다가 단 며칠 만에 다시 환자가 늘어나자 재지정을 하겠다며 우왕좌왕했던 정부의 과거 행태를 돌이켜보자.
전국의 뇌혈관 외과 의사 수를 파악하고 권역별로 이들을 묶어서 해당 권역 내에서는 병원을 이동하며 진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특히 응급수술의 경우 환자를 이송하는 것보다는 의사가 환자가 있는 병원으로 이동해서 수술을 하는 것이 이송에 의한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뇌혈관 응급수술의 수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 자료를 파악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그런 시스템을 운용할 적정한 권역별 인력 규모 산출도 가능하다. 그것이 안 되는 이유는 의료가 병원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같은 정도의 경력을 가진 의사가 몇 군데의 병원에서 유연하게 진료를 할 수 있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물론 관련 법안의 수정이 필요하고 비용은 좀 더 들겠지만 모든 병원에서 1년 365일 응급수술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해법보다는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 문제는 장기간 필수 의료 수가를 과도하게 억제해온 위에 사기업에 가까운 병원 위주의 진료가 고착되면서 생긴 것인데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버리고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퍼펙트 스톰에 가깝다. 결코 공염불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김현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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