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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은 보통 선거 전에 증세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년 대선에서 단연 화두는 복지 강화다. 보수언론으로부터 포퓰리즘과 세금살포 중독증으로 진단된 여당 측 후보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야당조차 관점에 따라서는 기본소득과 큰 차이가 없는 안심소득, 공정소득을 주장한다. 다들 증세 없이 논하기 어려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복지 방식이다.

이런 과감한 복지정책이 화두가 되는 것은 분명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변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완화를 위해 복지 강화가 진행됐지만 실상 지난 10년간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2018년 11.1%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최악의 자살률, 낮은 행복지수, 출산율 감소, 높은 청년실업률을 목도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더 심각해진 양극화가 코로나만 안정되면 해소될까? 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변화를 더 빨리 촉진시킨 것뿐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실업률과 양극화가 심화되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최고의 복지는 성장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제는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평등과 안정을 지향해야 함에 국민들이 더 많이 동의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실제 청년은 연봉을 희생하더라도 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안정도 100 대 1을 넘나드는 경쟁을 뚫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안한 사회를 헤쳐 나가기에 버겁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시장주의의 다른 말인 능력주의 분배질서가 지닌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2020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55%가 소득 상위 20% 가구에 속해 있다. 뛰어난 부모의 뛰어난 자녀들이 만든 당연한 결과일까? 능력주의를 말하기에 우리 사회는 불평등하고, 공정하지 않다.

폭넓은 사회안전망과 그를 통한 양극화의 해소는 안정적인 삶,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이제 대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어느 선거에서나 경제성장과 일자리, 모두가 잘사는 사회라는 구호가 넘쳐난다. 그러나 증세 없는 새로운 약속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것일 뿐이다. 정치인이라면 다들 두려워한다는 증세 논의를 빼고 나면 향후 5년도 비슷한 과거가 되풀이될 뿐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수준은 아니더라도 복지지출 비율이 OECD 평균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재원 마련 문제로 공격받으며 기본소득 공약에서 후퇴한다는 의심을 받던 이재명 후보는 최근 증세를 통한 재원조달 계획을 제시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지만 그래도 명확히 한발을 뗐다. 일부에서는 그의 기본소득 공약을 ‘기본 용돈’ 공약이라고 조롱한다. 연 100만원, 200만원이 누구에게는 용돈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절실한 돈일 수 있고, 그 돈이 지역소상공인한테 돌아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이다. 무엇보다 그렇게라도 시작해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방법적인 면에서는 국토보유세가 집값을 올릴 터이니 안 되고, 탄소세는 기업들이 힘들어질 터이니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국토보유세로 집 가진 사람들이 돈을 낸다면 소득 재분배 효과는 분명 있다. 또 그런 재분배 효과 때문에 집의 보유가 불리해지고 집값을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탄소세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화두인 기후변화와 연관된 문제이다. 기업부담을 문제로 탄소세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가? 탄소배출 억제를 위해서는 탄소를 배출하는 산출물의 가격이 올라야만 하고 그것이 기업에,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부담되는 것은 명확하다.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탄소배출 억제를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가 되어왔다. 탄소세를 지우고 그만큼 기본소득 형태로 배분해 국민 부담을 환원해 주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불평등도 완화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미 심각해진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와 같은 변화가 몰고 올 사회적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폭넓은 사회안전망 구축은 필수적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도 필연적이다. 한정된 재원을 두고 다투는 방식으로 근본적 변화는 가능치 않다. 국민 개개인이 단기적 손익을 따져 변화에 저항한다면 이는 단지 숙제를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송재도 |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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