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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함께 컨테이너 하역 일을 하던 만 23세 이선호군이 넘어지는 300㎏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게차와 같은 중장비를 이용하여 작업을 할 때에는 안전관리자가 입회하거나 신호수를 배치해야 하지만 그러한 조치는 없었다. 노동자를 현장에 투입할 때 해야 할 사전 안전교육도 생략되었다. 물론 안전모 지급도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러한 사고는 왜 발생하는가? 노동안전과 관련된 비용을 줄여 회사 이익을 남기는 후진적인 기업 경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노동안전에 만전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안전관리자를 채용해야 한다. 기업은 그것을 안 해도 될 추가 인건비로만 생각한다. 신호수 배치도 기업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인건비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물량이 늘어나 노동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도 인력 충원은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게 해서 노동 강도는 더 높아진다. 이러한 상황이어서, 안전관리자가 미리 작업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감시하고 작업이 완료된 후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게 하는 체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경영진이 내리는 작업 지시는 언제나 최대한 빨리 업무를 완수하라는 것이지 노동안전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진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고도 기존에 각각 분야별로 진행되던 작업을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회사가 올 3월부터 업무를 통폐합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기존에 평택항 세관에서 동식물 컨테이너 검역 하역 업무를 하던 이선호군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개방형 컨테이너 고정핀 해체 작업 및 청소 작업에 투입되었고, 이날 사고를 당했다. 과연 업무 통폐합이 없었다면 그날 이선호군이 위험한 개방형 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되었을까?

더욱이 인건비를 아낀다며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만들어, 그들에게 위험한 일을 전가한다. 위험의 외주화, 바꿔 말해 죽음을 외주화하는 것이다. 이번 사고 현장에서도 원청이 하청에 안전관리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하청은 인력 공급 업체를 통해 비정규직 인력을 공급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지게차가 두 대 동원되었는데, 한 대는 원청 소속 기사인 정규직 노동자가, 또 다른 한 대는 원청 지입차 기사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각각 운전했다. 현장 관리자는 원청에서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이었다. 이렇게 원·하청이 복잡하게 섞여 작업이 이루어지니, 최말단에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원청과 하청 관리자들의 지시를 받으며 작업을 진행해 안전과 관련된 통제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하청 직원은 이 일을 하라고 작업 지시를 내리고, 일용직 노동자는 그 지시에 따라 일하고, 원청 직원은 그 지시가 내려진 걸 모른 채 다른 작업을 하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러니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한국에서 산업재해로 한 해 2400여명이 죽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21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뤄낸 경제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선호군과 같은 죽음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재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즉 원청이 위험을 하청업체로 외주화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또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금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에나 시행된다. 게다가 50인 이하 사업장과 50억원 이하 건설공사 사업장에는 3년 후에나 시행된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엔 아예 적용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기홍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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