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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이른바 닌자론(NINJA Loan)이다. 닌자론(No Income No Job or No Asset Loan)은 소득이나 직업, 자산이 없이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시작하니 수요가 증가하면서 주택가격이 올랐다. 집값이 상승하자 주택시장으로 매수자들이 몰렸고 버블 상황으로 치달았다. 2007년 버블이 터졌다. 소득이 많은 경우엔 이자와 원금을 부담할 수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를 버티지 못했다. 2008년 미국 주택 소유자 가운데 10%가 집을 잃거나 연체상태에 빠졌다. 모두 소득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닌자론 정책 시행 이전에 무주택이지만 건실했던 가정은 버블 붕괴 이후 집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파산자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집을 갖도록 해주겠다는 정책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었다.

선한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은 정책은 없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과잉이념과 탁상행정의 끝은 정책실패와 시민피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적했듯이 ‘지상천국을 만들려는 선한 의도가 지옥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3차례에 걸쳐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그 가운데 임대주택등록 관련 대책은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다. 정부는 2017년 말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전국 임대주택 595만채 가운데 90% 가까이 임대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는 임대주택등록을 통해 세원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임대료 인상폭 제한(5%)을 통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등록임대주택의 매매를 장기간(8년) 금지하면서 양도세 중과 및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라는 당근책을 끼워 넣었다.

그러나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주택의 매매가 금지되면서 부동산시장에 주택 공급이 급감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줄면서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는 ‘임대주택등록이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범’이라는 아우성에 올해 7·10대책으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을 사실상 폐지했다. 3년 전 정부가 내건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정책이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고민 없이 시행했다가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임대주택등록 정책의 실패가 이후 부동산정책을 만드는 데 반면교사가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월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임대차3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국회 소위 심사보고, 반대 토론, 축조심사, 비용 추계서 첨부 등 국회법에 적시된 절차는 생략됐다. 충분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한국경제학회의 설문조사에서 경제학자 10명 중 7명꼴로 우려를 나타냈다. 전세 매물 부족과 전세의 월세화로 인한 임차인의 임대부담 상승을 걱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시가 급하다”는 이유를 들어 묵살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기대와 딴판으로 흘러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세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은 물론 매매시장까지 흔들리고 있다. 전세수급지수는 1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홍남기 부총리조차도 직격탄을 맞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를 겪었다. 집주인들은 자신이 살겠다면서 세입자들에게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규 세입자는 들어가 살 집이 없다. 서울 전세살이를 포기하고 인천·경기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이들 지역 주택가격이 들썩거리고 있다.

뒷수습을 잘하면 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다. 홍 부총리 스스로도 “과거 10년간 전세대책을 다 봤는데 단기대책이 없다”고 자인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와 3기 신도시 건립을 앞당기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장기 대책일 뿐이다. 주택시장이 안정을 찾으려면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기다린 뒤에도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 다른 희망고문이다. 반쪽짜리 세입자대책이 다른 세입자를 고통받게 만든 것이다. 정부의 헛발질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됐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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