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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단순히 더불어민주당 광역 지자체장의 한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의 그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와 가장 소외된 사람을 위해 일한 인권변호사였고, 또 소위 ‘민중에서 시민으로’의 시대를 만든 중산층 시민운동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을 만들고 ‘사회 혁신’으로써 시민운동과 시정을 접속한 거버넌스를 새로 창출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과오와 죽음은 더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죽음 이후에 박 전 시장 개인의 공과뿐 아니라 그가 남긴 시민운동의 유산과 서울 시정에 대해 평가하고 조상할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럴 겨를이 단 한 시간도 없었다. 죽음 자체를 모욕한 ‘보수 유튜버’의 행태 같은 극단적 진영 정치와 여당 쪽 일부가 격발한 논란 탓이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되레 피해자와 젊은 여성 정치인을 공격하고,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를 배설하는 일도 속출했다. 그것은 착각과 달리 고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업적이나 정책은 싹 묻고 박 전 시장이 젊은 세대와 여성들에게 여러 ‘진보’ ‘꼰대’ 위선자의 하나로 귀착되게 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박원순세대 혹은 586세대가 구성해온 ‘그 시민’과 ‘그 민주화’를 제대로 애도하여 보내고, ‘진보’와 ‘민주’를 새로운 내용과 주체로 재구성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1980~1990년대식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틀을 넘어 더 깊어진 계층, 지역, 세대 불평등을 치유하기 위한 방책을 실행해야 하지 않나? 이러한 시대의 근본 문제는 최악의 자살률이나 출생률에서 보듯 사회 자체의 지속 가능성과 연관되어 있다.
민주당이 서울과 부산 시장 공천을 위해 당원 투표를 동원하고 당헌까지 개정한 일은 집권 이후 반복돼온 행태의 종합판 같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판을 진영 논리로 짜고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명운이 ‘민주당 후보 당선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몰고 가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의 ‘적폐’와 ‘토착 왜구’의 위험을 과장하거나 현실론으로 약점과 치부도 정당화하며, 오히려 다른 대안을 한가하다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안일하고 한가한 것은 바로 저런 인식이다. 오늘날 집권당의 ‘내로남불’을 중지하는 것만큼 시급한 건 없다. ‘내로남불’은 모순과 구태에 구조적으로 연루되어 갖은 기득권을 누리면서도 이에 대해 성찰할 능력을 갖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내로남불’은 ‘개혁’을 희화화하고 정치에 대한 환멸을 다시 온 사회에 번지게 한다. ‘내로남불’이야말로 ‘토착 왜구’와 ‘적폐’의 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고 계속 변이하여 살아남게 한다. 계층·지역·젠더·세대 불평등의 실상이 바로 거기 들어있다.
그들 양당의 열성 지지 그룹에 속하지 않고 민생과 무관한 소모적 정쟁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은 이제 다른 길을 열고 싶다. 내년 4월에 시민들은 그간의 서울시정뿐 아니라 ‘내로남불’과 무책임 정치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공기 맑고, 더 평등한 서울을 원한다. 강남식 소비문화와 대치동식 교육, ‘강남 건물주’가 선망의 대상이 아닌 ‘다른’ 도시의 삶을 원한다. 청년들도 빚 없이 집 한 칸을 얻을 수 있고 성소수자·장애인·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는 진정한 ‘global Seoul’을 원한다. 서울의 이제까지의 ‘공유’와 ‘혁신’ 슬로건이, 코로나 시대에 절실한 인간 연대와 공공성의 제고를 위한 정책으로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새로운 세대와 가치를 대변하는 ‘시민 후보’가 시민들의 힘으로 나섰으면 한다. 시민운동의 복원과 재구성이 보궐선거를 매개로 논의되고 조직되기를 희망해본다. 조국 사태, 정의연 논란, 박 전 시장의 죽음을 거치며 큰 상처와 갈등을 겪은 시민운동의 윤리와 논리를 갱신할 방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마치 참여연대와 새로운 시민사회가 만들어진 1990년대 후반에 그랬듯, 시민·노동자·연구자들이 나서서 3040 활동가들을 중심에 세우고, 2030과 5060세대가 대화의 장을 열고, 시민사회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다시 운동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의 힘과 시민사회의 역량에 기반한 ‘자치 도시’의 수장 후보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내년 4월에 ‘그놈이 그놈’이라며 시민들이 기권하거나 강요된 듯 또 ‘차악’을 택하지 않고, ‘범시민 후보’가 ‘내로남불’과 ‘적폐’를 꺾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무려 40조원의 예산을 쓰는 거대 서울의 시장 자리가 민주당, 국민의힘 등 정치꾼들의 대통령병을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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