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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아버지를 따라 지금은 문을 닫은 ‘아세아 극장’을 찾은 이후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영화가 100편은 넘는다. 문화부에서 영화 취재를 담당한 이후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극장에 간다. 영화 보는 게 업무가 된 지금도 극장 가는 길은 항상 설렌다. 스크린 위로 영화 제목이 떠오를 때는 나도 모르게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많은 영화팬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해봤고,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극장에 갈 때 ‘영화가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한 적은 많아도 안전을 걱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과 동료들의 안전까지 고려해야 하는 때다.
지난 22일 영화 <테넷>을 보러 극장에 다녀왔다. 위험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적인 화제작이 세계 최초로 개봉하니 봐야만 했다. KF94 마스크를 챙기고, 다른 관객을 만나지 않게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 중간중간 눈이 감기는 것이 영화 내용보다는 ‘산소부족’으로 인한 현상 같았지만 2시간30분 동안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극장을 나서며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이 <테넷> 속 시간여행을 재현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회복하고 있던 일상은 감쪽같이 과거로 돌아갔다. 특히 영화계 상황은 지난 3월과 거의 똑같아졌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에는 극적으로 파국을 막아줄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영화 속 영웅이 현실에 나타난다고 해도 뾰족한 수를 찾기는 어려울 듯싶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올해 영화 관객 수는 3803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억3124만명이 극장을 찾은 것과 비교하면 관객이 3분의 1 밑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지난 1월만 해도 월 관객 수는 1600만명 수준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2월 관객은 737만명으로 전월 대비 60% 가까이 줄었고 3월에는 183만명, 4월에는 97만명까지 떨어졌다.
잠시 희망이 찾아오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조금씩 잦아들면서 극장가는 5월부터 활력을 찾았다. 개봉을 미루던 기대작들이 조금씩 관객들을 찾아왔다. 지난 6월 <#살아있다>를 시작으로 7월에는 <반도>와 <강철비2:정상회담>이, 8월 초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오케이 마담> 등이 차례로 극장에 걸렸다. 관객들도 호응했다. 월별 관객 수는 6월 386만명, 7월 561만명으로 급속히 늘어났고 8월에는 800만명을 넘겼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광복절 연휴 이후 극장가는 다시 얼어붙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팬들이 기다려온 <테넷>도 주말관객이 하루 10만명대에 불과하다. 봄날은 짧았고, 다시 온 겨울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조차 없다.
불행하게도 오랜 영화팬으로서, 또 지금은 영화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응원뿐이다. 모두가 일상을 찾을 때까지 극장도 잘 버텨주기를.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늘 그랬듯이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가 현실에서도 이뤄지기를.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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