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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을 담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안 통과만큼이나 주목받은 게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이른바 ‘5분 연설’이다. 자신을 “임차인(세입자)”이라고 소개하며 시작한 이 연설은 발언 당일 ‘명연설’로 일부 언론에 소개됐다. 현재도 유튜브 등에는 ‘레전드 연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설’ 등의 찬사와 함께 윤 의원의 발언 영상이 소개되고 있다.
이미 나온 지 열흘도 더 된 이야기를 뒤늦게 꺼낸 이유는 윤 의원의 연설이 ‘명연설’도 아닐뿐더러, ‘명연설’로 남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전제가 틀렸다. 윤 의원은 새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전세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월세가 전세를 추월한 지는 오래됐다. 저금리로 인해 전세보다 월세로 얻는 수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 이후로 전세의 월세 전환 추세는 계속됐다. 이에 대해선 국토교통부도, 국토연구원도, 한국감정원도, 심지어 시장 친화적인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도 분석이 동일하다.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전·월세 비율은 2016년부터 ‘40 대 60’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 중이다.
월세를 놓을 ‘여력’이 있는 집주인들은 진작에 월세로 전환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드물게는 여력이 있음에도 정말 ‘선의’로 세입자를 위해 전세를 놓는 집주인들도 있겠지만, 그런 집주인들이라면 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월세로 돌아설 것 같진 않다.
전세가 세입자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건 큰 착각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전세라는 제도 덕분에 더 유례가 없을 법한 ‘갭투자’가 생겨났다. 투기가 극심한 지역의 경우 갭투자 비중이 전체 매매거래의 70%를 넘나든다. 최근 몇년간 이어진 부동산 폭등으로 이미 짭짤한 수익을 얻은 갭투자자들이 많다. 다주택자 국회의원 중에도 전세를 준 사이 집값이 크게 오른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윤 의원은 “누가 임대를 주겠나”라고 했다. 틀린 말이다. 다주택자 집주인이라면 임대를 주는 게 상식적이다. 비워둬봐야 세금만 나갈 뿐 아무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상으로도 집을 오래 비워두면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든다. “자식이나 조카에게 임대를 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임대차보호법과는 관계가 없다. 이왕이면 자식이나 조카에게 임대를 놓을 집주인들은 이미 그렇게 했다. 윤 의원의 발언은 마치 ‘임대’라는 호의를 베풀던 집주인들이 이제 그 호의를 거둘 것이라는 ‘엄포’처럼 들려 불편하다. 이는 “임대 놓지 않고 비워둘 것”이라는 일부 집주인들의 말이 대세인 양 세입자들을 겁박하는 일부 언론보도와 맥락을 같이한다.
발언 중 상당 부분은 여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대한 비판인데,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간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막은 당사자가 누구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과거 국회 대부분을 다수당으로 지낸 미래통합당이다. 통합당이 21대 국회의 다수당이 됐더라면, 하다못해 법사위라도 가져갔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아무리 봐도 어디가 ‘명연설’인지 모르겠다.
<송진식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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