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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을 가든, 고택을 가든 우리는 바깥에서 그들을 둘러본다. 그림을 볼 때처럼, 또 조각품을 볼 때처럼 건축물도 그렇게 바라본다. 안동의 병산서원, 그곳의 만대루는 그래서 특출하다. 둘러볼라치면 들어와서 보라고 연신 잡아끈다. 하여 만대루에 오르면 마음눈 한껏 사방의 경관이 담겨진다. 만대루를 보러 가서는 만대루가 아니라 이렇듯 만대루에서 보이는 것을 가득 보게 된다.
어찌 만대루뿐만 그러하겠나. 고택이든 고찰이든, 그 안에서 살려고 지었으니 안에서 바깥을 바라봄이 그들과 온전히 만나고 대화하는 길일 터다. 안타깝게도 문화재 보전 등의 이유로 그렇게 볼 길이 닫혀 있지만 말이다. 한편 그 바깥에서 바라봄을 어지간히 인정 못 받는 동네도 있다. 산이 그것이다. 산을 제대로 보려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즉 등산을 해야 하고 그것도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들 말한다. 예컨대 둘레길을 걸으며 산을 빙 둘러본 것은 산 주변을 본 것이지 산의 참모습을 본 건 아니라 한다. 산을 제대로 보는 길은 어디까지나 정상 등정이라는 것이다.
한데 ‘정상에 올라’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공자는 태산의 정상에 올라 뭇 산이 작음을 휘둘러보았다고 한다. 우리라고 하여 별다를 바 없는 듯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우리도 발아래 뭇 봉우리와 산자락을 한바탕 호탕하게 굽어보곤 한다. 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오른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이렇듯 산이 아닌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더는 볼 산이 없음이다. 산은 나보다 높아야 산이요 또 산다운 산일 터, 내 발밑에 밟히고 있는 것이 어찌 산이겠는가.
산에 들어가면 그 자체로 높은 곳에 처하게 되며, 좌우를 둘러보면 더 높이 솟은 봉우리를 보게 된다. 현명한 자가 거처할 곳도 이와 같다.
제자백가서의 하나인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가령 봉우리 하나에 올랐을 때, 모름지기 등산은 정상 등정이 맛이지 하며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나아갈 수도 있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한다는 뜻이다. 그런 후 더 오를 것인지를 판단한다는 얘기다. 신축년이 시작됐다. 산 어깨, 그쯤의 봉우리에서 한 해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싶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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