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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사람들은 어떻게 먹나 하고, 가게 문앞을 기웃거리고 옆 테이블의 음식을 엿보던 일들이 가물가물하다. 지금은 떠날 수 없는 때. 멀어지는 추억이나마 붙잡는 마음으로 사진 폴더를 뒤적여 보았다.

어떤 화려한 식사 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수수한 아침식사다.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평소엔 곧잘 거르는 아침을 가급적 든든하게 챙겨 먹는 편이다. 많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길을 나섰을 때 전에 허기가 발목을 잡으면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해서, 에너지를 채우자는 마음으로 충분히 먹고 나간다.

싱가포르의 호커센터에서 만난 아침식사. 빨간 플라스틱 컵 안에 뜨거운 물과 날달걀이 담겨 있었다.

싱가포르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첫 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호커센터(hawker centre)’에 온갖 먹거리가 있었다. 이곳에선 1800년대부터 거리의 노점이 다양한 요리로 이민자들을 먹여살리며 명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노점은 싱가포르가 독립한 이후 위생 등 문제로 정부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는데, 여러 차례 규제를 도입하다 결국 1970~1980년대에 광장 형태의 시설을 주거단지와 교통 요지 인근에 대대적으로 건설해 노점들을 수용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푸드코트가 호커센터다.

인근 주민들은 여기서 아침 식사도 해결하고 퇴근 후의 맥주 한 잔도 즐기는 듯 했다. 둘째날 아침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을 마다하고 가까운 호커센터로 향했다.

토스트와 커피를 파는 집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커피는 무려 ‘핸드 드립’이었다. 담당 직원은 원두를 담은 종이 여과지를 쫙 깔아놓고 커다란 주전자로 긴 물줄기를 만들며 빠른 속도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줄에 합류한 나는 바짝 긴장해 남들 대화를 엿들었다. 식빵과 삶은 계란, 커피, 요거트로 된 세트가 인기 메뉴인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싱가포르의 관영 푸드코트 ‘호커센터’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직원은 내 몫의 세트를 건네며 “빠펀쭝(八分中, ‘8분’이란 뜻)!” 하고 소리쳤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뜨거운 물과 날계란을 넣고 뚜껑을 덮은 빨간 플라스틱 컵을 가리켰다. 아하! 8분 후에 건져 먹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자리로 돌아가 알람을 맞춰 놓고 요거트를 열어 맛있게 먹으며 계란이 익기를 기다렸다. 그날의 단순한 아침식사가 얼마나 맛있던지! 내가 직접 8분을 익혀 먹지 않았어도 그렇게 맛있었을까?

LA에서 출발해 그랜드캐니언으로 향하는 길에 한 밤을 지낸 애리조나주의 작은 도시 윌리엄스의 아침식사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도시는 미국 동쪽과 서쪽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대륙횡단 고속도로 ‘루트66(Route66)’이 지나는 곳이다. 루트66의 영광은 1984년 개통된 ‘주간 고속도로 40(Interstate 40)’에 밀려 자리를 내주었고, 그의 영광을 같이 누렸던 윌리엄스는 이제 인구 3000명의 작고 조용한 동네로 남아 간간이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랜드캐니언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묵어가곤 하는 작은 도시 윌리엄스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하던 카페.

낡은 호텔에서 자고 일어나 주인이 알려준 카페로 가니 주민들이 벌써 북적북적 아침을 먹고 있었다. 스크램블드에그나 프렌치토스트 같은 게 주 메뉴였는데, 내 마음을 뺏아간 것은 커피였다. 맛이 특별한 건 아니었는데, 얼마든지 리필이 되었다. 낡은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주인장이 주전자를 들고 설렁설렁 와 주는게 좋아서 그날은 모닝커피를 양보다 조금 더 마셨다. 여행지에서의 내가 사랑한 것은, 어쩌면 밥 보다도 그것을 내어준 사람들과 눈빛이나마 주고받은 순간들인 것 같기도 하다.

글·사진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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