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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노태우씨(88)의 아들 재헌씨(55)가 지난 29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들이 잠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재헌씨는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쓴 아버지 명의의 조화도 바쳤다. 5·18 가해자인 신군부 측 인사의 이름이 적힌 조화가 5·18묘지에 놓인 것은 처음이다.
재헌씨는 건강문제로 외부활동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를 대신해 광주를 찾아 ‘대리사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처음으로 5·18묘지를 찾아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같은 해 12월에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의 ‘김대중홀’과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했다.
재헌씨의 잇단 광주 방문에 대해서는 우선 “의미 있는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두환씨 등이 여전히 5·18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노씨 명의로 조화를 바친 것은 사죄의 첫발을 뗀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광주시민들에게 구체적인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5·18 피해자 단체에서는 아들의 대리사죄로 노씨를 용서한 것처럼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이종 5·18부상자회 회장은 “재헌씨가 피해자들은 만나지도 않고 슬쩍 광주를 다녀간 것을 두고 진정한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발포 명령자 규명 등 진상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공식 사과한 뒤 5·18묘지를 찾는다면 우리가 직접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노씨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무력진압 등에 관여한 혐의로 1996년 기소된 노씨는 법원에서 반란중요임무종사·상관살해·내란모의참여·뇌물 등 무려 7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으며 그해 12월 특별사면됐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에 대해 “전두환의 참월(僭越·분수에 넘침)하는 뜻을 시종 추수(追隨·뒤쫓아 따름)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業)을 이었다”고 밝혔다. 노씨는 2011년 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에 대해 “유언비어가 원인이었다”는 식으로 기술하며 신군부의 입장을 두둔했다.
광주에 참회하고 싶다면 노씨와 가족은 회고록부터 다시 써야 한다. 그리고 40년 전 진실을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게 순서에 맞다.
<전국사회부 | 강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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