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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은 사외이사가 상장회사 2곳을 초과하여 겸직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여러 사외이사를 겸직하며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보면 이 규정은 불필요한 규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의 본업과 함께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는다면, 시간의 한계로 인해 사외이사 업무에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사외이사는 겸직을 제한하지만 사내이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고 과도한 겸직이 있는 경우 시장의 기능이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회장’이라는 이름의 초인이 있어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들은 여러 회사의 이사를 겸직하며 업무도 완벽히 해낸다고 주장한다, 롯데그룹의 회장님은 2019년 상장회사 4곳에서 ‘상근’을 하시고 1곳에서 비상근으로 재직하셨다. 5곳의 회사에서만 10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정말 능력이 좋아서 그 이상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주었다면,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주들은 더 많은 돈을 주고라도 회장님으로 모실 것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회장님은 2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은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출석률이 0%다. 제일 높은 출석률이 31%이니, 이분은 일을 안 해도 회사에 기여하는 초인이시거나,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초인이시거나, 어쨌든 초인이신가 보다.

최근의 개각을 보니 새로운 초인들이 나타나 나를 무안하게 한다. 개각을 통해 2명의 의원이 장관이 되면, 장관 중 6명이 국회의원이다. 18개 부처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장관으로 임명된 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했다는 기사는 볼 수 없다. 장관과 의원 모두 높은 의전서열과 대우가 보장되는 자리다. 겸직 시 보수는 높은 쪽만 받겠지만, 보좌진도 유지되고 집무실도 두 곳이 있으니 이중적인 혜택은 여전히 많다.

의원이나 장관이 도장만 찍어주면 되는 한가한 자리라 겸직이 가능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장관이 개별적으로 부담하는 업무가 재벌 회장보다 덜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의 결정은 전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재벌그룹 회장들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들이 두 가지 업무를 다 잘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장관도, 자신이 가진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는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이 의원직이라는 보험을 두고 장관 업무를 하면서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에 가서 도전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면 진정성이 느껴질지 모르겠다.

능력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님들은 기업인의 겸직을 비판하고 규제하는 입장이다. 재난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말하고 나눔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보궐선거 비용을 핑계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옹색하다.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에 정치인들은 다직업자 규제를 신설해 1주택에만 모범을 보이지 말고, 1직업에도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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