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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이전과 어떻게 일상이 달라졌느냐 묻는다면 역시 답은 ‘단절’일 테다. 표정도 알 수 없게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은 마스크, 서로 만나 대화하지 못하고 줌(Zoom)으로만 안부를 묻는 사람들.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제안조차 더는 가볍지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단절과 고독을 체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나는 그나마 고독하지 않은 편이다. 회사도 다니고 있으니, 좋든 싫든 사람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기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 회사도, 얼굴 보며 밥 먹을 식구도 없이 혼자 온전히 하루를 지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사는 아파트 뒤의 체육문화센터는 벌써 6개월이 넘도록 무기한 휴관 중이다. 오후 시간이면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이던 아이들과 아이 보는 어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1인 가구 청년, 취업준비생 청년들이 무료로 드나들던 청년 공간도 문을 닫았다. 그런가 하면 뒷골목의 노인복지관, 실버센터 문 앞엔 아예 철창이 섰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교류공간에서 공동체의 아늑함을 느꼈을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답은 통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우울증 치료자 수는 상반기에만 약 60만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한 해의 우울증 치료 환자의 수가 79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상반기만인데도 매우 많은 숫자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우울증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할 때 치르는 서울시의 공영장례 또한 그 숫자가 많아졌다. 고독사가 늘었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재난은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가족이 부재한 자리에 찾아온 돌봄의 부재는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런 현실이어서 가족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의 돌봄’이 없는 곳에서 답은 가족뿐인 걸까. 그렇다면 그 ‘가족’은 누가 될 수 있는 걸까. 현행법은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만을 가족으로 정의한다. 현재 나는 결혼 계획이 없다. 내 계획대로라면 나는 법적으로 영영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혼자 산다면 전염병이 도사리는 긴 겨울을 건강히 견딜 수 있을까.
얼마 전 여성가족부는 결혼제도 밖에 있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법 제도 안의 ‘가족’으로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나에게 가족은 서로 돌보는 공동체다. 공공의 돌봄이 모든 취약계층을 어루만질 수 없다면, 현재 존재하는 가장 작은 공동체들에 돌봄의 권리와 책임을 줘야 하지 않을까.
혼인과 혈연 이외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4인 가족에 갇혀 있지 않다. 나는 혼자서도 외롭지 않으며, 결혼하지 않고도 나를 돌봐줄 사람이 있는 공동체를 갖고 싶다. 내 인생에 남편은 없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가질 권리는 있으니까.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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