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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이 문제라고들 한다. 단순한 연령대에 불과할 수도 있는 20대 남자들을 ‘이대남’이라고 호명할 때는 그만큼 뚜렷한 세대적·젠더적 특징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이대남’이라면 우선 안티페미니즘, 공정, 능력주의, 한탕주의 등 온통 부정적인 어휘와 결부되어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보궐선거 결과와 이준석 대표 당선으로 드러난 최근의 현상도 진보연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이런 인상을 사실로 만든 계기였다. 그러나 이념적 가치 기준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대남’ 현상에 맞지 않는 시도일지 모른다. 도대체 이들은 좌우나 보수·진보 같은 가치 지향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대남 자신들도 마찬가지이다. 선거와 매체 반응을 통해서 ‘말을 했더니 들어주더라’ 같은 효능감을 경험하면서, 세대 스스로 과대 대표된 집단 정체성을 가지게 된 건 아닌지 의심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대남들이 공유하는 공정론, 능력주의, 안티페미니즘 등은 가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에 읽은 <K-를 생각한다>는 20대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책이다. 그 자신도 20대 저자인 임명묵씨는 그 세대의 생각을 이념적 지향이 아닌 ‘정서적 반응’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식민지 피해와 전쟁의 참화가 아직 가시지 않은 1960년대에 상대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출발한 586세대와, 이미 계층화된 그들의 자녀로서 세계화 수혜층과 저부가가치 노동이라는 양극적 경제구조에서 택일을 해야 하는 20대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절차적 공정과 능력 경쟁이라는 동아줄밖에 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정서적 반응일 뿐, 가치 지향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0대가 바라는 것은 임명묵씨가 진단하듯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일 것이다. 그들이 유일하게 경험하기도 했고 나름 공정을 실현한 학교교육의 성과주의 시스템처럼, 합의된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성공과 실패가 예측되는 시스템 말이다.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능력주의가 사실은 한 번의 시험 합격으로 평생의 지대(地代)를 확보하는 시험합격주의라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조건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까지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시스템의 절차적 공정이라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20대 능력주의의 숨은 뜻이라는 얘기다.

사실 요즘의 이대남 담론이나 세대론의 상당 부분이 허구에 기초해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지적하고 있는 터다. 최근 공중파 방송의 20대 의식조사에서 지적된 이대남의 퇴행성이 사실인지 논란이 되고 있거니와, 다른 연구조사에서는 전혀 세대적 특이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세대론은 정말 허구에 불과한가. 문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사실만큼이나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온다는 점이다. 이대남을 몹쓸 놈들이라 보는 인식처럼 586세대를 위선적 세대로 보는 인식도 사실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세대론이 강화될수록 현실도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미디어와 현실정치에서 과대 대표된 이대남들과 달리, 능력 경쟁조차 남의 얘기일 뿐 그 장에 뛰어들 여력이 없는 청년들이 무수하다. 또한 586세대에도 80년대 학번의 숫자를 붙이지 못한 56들이 훨씬 많다. 경쟁의 장에 끼어들지 못한 이대남과 학번 없는 56들이야말로 자기 세대보다 더 동질적인 존재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세대론을 증폭하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보다, 누구든 열심히 살면 10년 안에는 작게나마 내 집을 장만할 수 있고, 하위 60퍼센트 안에 들어도 내 삶을 충분히 가꿀 수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역시 정치인가? 그 믿음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 정치에 대한 분노를 세대를 넘어 공유해야 하지 않는가?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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