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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예종의 전규찬 교수가 형제복지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책을 만들자고 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종선씨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전규찬 교수는 인문학적 맥락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명하는 글을, 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한 글을 썼다. 그래서 나온 책이 <살아남은 아이>였다.
내가 공저자로 참여했지만, 이 책은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씨가 아홉 살에 입소해서 3년 동안 겪었던 일을 정리해서 쓴 글과 36장의 만화 컷이 핵심이다. 군대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에서 매일 폭행을 당했다. 겨우 아홉 살이었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끔찍한 폭행 끝에 사망한 시체는 교회 뒤에 암매장되었다. 그러면서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고된 노동에 동원되었다. 같이 입소했던 친누나가 눈앞에서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 항변도 하지 못했다. 밤이면 성폭행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한종선씨는 지금도 밤에 불을 끄지 못한다.
10년 전 당시 어둠에 묻혀 있던 형제복지원 사건이 한종선씨의 활동과 다른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언론들도 관심 있게 보도했고,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고, 토론회도 열면서 주목받는 이슈가 되었다. 그러자 선감학원 생존자들이 나타났고, 서산개척단 피해자들도 움직였다.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최승우씨는 국회 앞에 움막을 짓고 2년 동안 노숙을 하고, 국회 의원회관 테라스에도 올라가 농성을 하면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를 구성할 수 있게 관련 법도 개정시켰다. 마침내 2020년 12월10일 진화위가 구성되어 활동에 들어갔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일 먼저 사건을 접수했다.
또 다른 형제복지원들 재조사 시급
지난 24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총체적인 인권침해 사건임을 확인”했다. 형제복지원의 야만적인 실태가 폭로된 지 35년 만이었고, 한종선씨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지 10년 만이었다.
진화위의 조사결과를 보면,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 수용 인원은 3만8000여명이었다. 이 중 1975년부터 1988년까지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는 657명이라고 진화위가 밝혔다. 그렇지만 이것도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 의문사한 경우가 있고, 기록에 남기지 않고 암매장한 경우도 있다. 의료상황도 열악해서 사망자와 결핵사망자가 일반인구 사망률보다 13.5배, 일반인구 결핵사망률보다 29배 이상 높았다.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여하는 ‘화학적 구속’도 있었다. 여섯 살에 실종되었던 한 아이는 48년 만인 올해 초 극적으로 가족들을 만났다.
이런 장기간의 자의적 구금과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그리고 가혹한 강제노동과 같은 끔찍한 인권유린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가와 지자체는 이런 시설에 정부보조금까지 주면서 지원했다. 1975년의 내무부 훈령 410호에 의해서, 1980년대에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이유로 거리정화를 해야 한다는 정권의 지침으로 거리에서 단속당한 부랑인들은 지자체가 위탁한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었다. 부산시가 위탁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차량을 운영했고, 거리에서 부랑인이 아닌 사람까지 단속해 감금했고, 실적을 올려야 하는 경찰과 구청 직원들은 이들과 한패로 움직였다.
형제복지원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형제복지원에서 삶과 가정이 파괴된 경험을 한 생존자들은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야 한다. 국가의 잘못 인정과 사과만이 아니라 그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상하고,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탈시설지원법 빨리 입법화해야
그와 함께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1942년 선감학원이 설치된 이래 시설에 감금되어 인권침해를 당했던 사건들을 전면적으로 재조사하고, 현재의 사회복지시설 실태도 파악해야 한다. 정책도 수용 중심의 사회복지시설을 해체하고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 형제복지원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다른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사회복지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보조금까지 받아가며 운영 중일 수 있다. 마침 국회에 탈시설지원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니 정부와 국회가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마음을 합치는 일부터 해나가면 더욱 좋겠다. 이번 진화위의 조사결과 발표를 이런 정책 방향의 계기로 삼을 수 없을까? 지금도 누군가 어두운 골방에 갇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연재 | 박래군의 인권과 삶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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