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들이 비호감이라는 것은 누구나 ‘감’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여론조사 자료에도 명확히 나타난다. 정치학자들이 설문조사에서 사용하는 ‘감정온도계(feeling thermometer)’라는 개념을 잠깐 살펴본다면 후보, 정치인, 정당 등에 대한 유권자의 호불호의 감정을 0도(매우 싫어함)에서 100도(매우 좋아함)까지 기록하게 한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과거 대통령 선거 조사들을 보면, 당선이 유력시되는 주요 후보자들이 대체로 50점에서 60점 사이의 점수를 받았던 반면, 이번 선거의 유력후보자들은 그보다는 훨씬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지자들은 미심쩍어 하고, 반대자들은 추상같이 싫어하며, 유권자들은 양자가 싫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러 비호감을 살 정치인은 없으며, 아마도 이들에게 전적인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가장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혹은 덜 싫어하는 정치인이 거대 양당의 후보자로 선출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당 지지자뿐 아니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중도적 유권자들과 상대 정당의 지지자들도 일정하게 끌어올 수 있는 ‘순한 맛’의 후보자가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거대양당의 후보자들은 후보자로 선출된 이후, 비당파적 중간층의 유권자들을 견인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선명성을 강조하고 상대 정당의 후보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견고화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선거 전략으로서도 매우 현명하지 못했으며, 많은 유권자들에게 흑백의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선거 자체에 대한 비호감으로 확산되는 데 일조하였다.
이에 추가적으로 고려할 사실은 거대 양당이 선출한 후보들은 당내 기반이 아예 없거나 취약한 ‘아웃사이더’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소속 정당의 전통적 지지자들 사이에서 양 후보들의 비호감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로 양당 후보들은 ‘집토끼’들을 결집하는 데 급급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되기 불과 4개월 전에 입당한 윤석열 후보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건 민주당의 ‘주류’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재명 후보가 각 당의 후보로 선출되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거대 양당의 목표는 선거에서 60% 이상의 득표를 거두는 압승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지고 정치적 갈등을 강화함으로써 손쉬운 47%의 승리를 얻는 것, 혹은 실패하더라도 안정적인 44%의 지지를 얻고 양당의 대립적 공생을 존속하는 것이 더 안전한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그것이다. 이들은 현역의원이나 지역위원장 및 당협위원장이 중심이 된 당 내 역학관계를, 석 달 뒤의 지방선거와 22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교란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이 없는 가장 안전한 후보자들을 선택하였다. 단순히 대통령 선거의 승리보다도 양당의 존속,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존 양당 대립 구조와 당내 역학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것 같다.
그 결과로 이들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한 선거를 치르지 않았다. 선거 운동의 대부분은 상대 후보가 얼마나 비적합한 후보인지를 강조하고, 상대 후보 지지자들을 고립시키는 데 할애되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섀도복싱을 하는 것처럼 어퍼컷과 발차기를 날려보았지만, 정작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도, 유권자들에게 내비쳐보인 적도 없다.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갈 대통령이 되려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그 누구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이면 흑백의 선택을 강요하는 투표용지를 들고서 사면이 막힌 기표소에서 억겁과도 같은 5초를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대 최고를 기록한 사전투표율을 보더라도 그 어려운 선택을 모두 기꺼이 할 준비가 된 것 같고, 나 또한 그러하다. 자신을 지지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이들의 대통령이 되는 일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수백 배는 어려운 일임을, 그들의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과정이야말로 성공의 첫발임을 아는 이가 우리의 새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