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년 전 여당 중진의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는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에서 교육위를 지망했다고 했다. 경력상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선거를 치르는 입장이다보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학교운영위 등 지역사회에서 입김이 강한 그룹과 공개적으로 만날 기회가 많고, 교육청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 숙원사업도 꽤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사익을 공익적으로 추구하는 게 현장 정치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막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 폭주 기관차처럼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 과정을 보면서 그 만남이 떠올랐다. 빙공영사(憑公營私). 언론중재법이 ‘공익으로 포장된 사익 추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허위·조작 보도의 고의 및 중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 중 하나로 ‘기사의 본질적 내용과 다른 삽화 등을 넣어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를 명시했다. 지난 6월 조선일보가 성매매 관련 기사에 내용과 무관한 조국 전 법무장관 부녀를 연상시키는 삽화를 넣은 사건이 투영된 조항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20일 기사에서 “조 전 장관의 한풀이를 위한 ‘특별 조항’을 끼워 넣었다”며 “일반적·포괄적 내용이 담겨야 할 법에 언론사의 삽화 선택과 같은 지엽적 조항을 담은 것은 입법 추진의 진짜 동기가 단순히 일반인 피해 구제에 그치지 않음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동의한다. 2019년 8월 시작된 ‘조국 사태’부터 민주당 강성 지지자 사이에선 ‘언론개혁’이 중요하게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고 경선이 가열되면서 집권여당의 ‘우리편 지키기’ ‘강성 지지층 눈치보기’는 노골화하고 있다.

물론 언론은 잘못된 보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이 독자와 시민의 신뢰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이유도 누적된 언론의 시대착오적인 보도관행에서 비롯됐다. 그렇다 해도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입법 독주’에는 찬성할 수 없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투옥과 고문에 굴하지 않고 자유언론을 이루고자 했던 원로들까지 나서고, 국경없는기자회 등 유수의 해외 언론단체마저 우려를 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회적 합의와 숙의 속에 이뤄져야 할 입법 과정이 꼼수와 독선으로 훼손되는 모습도 안타깝다. 그러나 ‘소귀에 경 읽기’다. 민주당은 25일 새벽 4시 법사위에서독소조항을 강화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애정 있는 비판이라도 비판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그래서 비판을 용인하는 게 민주주의고, 그 비판을 약으로 삼아 문제를 해결하며 지지를 넓혀가는 게 정치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포용을 강조하며 출범했다. 그러나 포용성과 다양성은 점차 ‘그들만의 세계’로 쪼그라들고 있다. 끼리끼리 뭉치며 ‘내로남불’이 심해졌고, 회전문 인사는 반복됐다.

경향신문이 26일 보도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문재인 정부 싱크탱크’ 제목의 인터랙티브 기사에는 그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전·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관, 26곳 국책연구기관장 등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학자들을 분석한 결과, 154명의 연결망이 나타났다. 함께 논문·책을 썼거나, 대학 동문이거나, 각종 위원회·대선캠프에 참여하는 등 공직 진출 전부터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들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한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수장으로 있는 노동·경제·사회 국책연구기관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최저임금·분배 등에 관한 연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코로나 위기’다. 집값과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청년들은 직장과 집, 결혼 등을 포기당하며 미래 불안에 떨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그 결과 서민은 ‘벼락거지’가 되고, 코로나19 확산에 영세 자영업자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거대 다수당이 되고도 묵은 민생현안을 실감나게 풀지 못하는 집권당이 언론중재법 강행에는 막힘이 없다. 무능하다는 비판을 지지층의 환호로 가리려는 것 아닌가. 그런 방식으로 정권 재창출이 이뤄진들 그것은 과연 국민에게 이로울까.

(인터랙티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문재인 정부 싱크탱크(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21/network)’에서는 더 풍부한 콘텐츠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오피니언 - 경향신문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www.khan.co.kr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