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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고 한다. 벚꽃은 따뜻한 남쪽 끝 마을부터 피기 시작한다. 남쪽부터 망해 올라간다는 말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지원자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면서다. 어디 수도권 집중 현상이 교육계뿐이겠는가. 일자리와 생활 인프라가 좋은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중단된 적이 없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3차 신규 공공택지 대상지인 경기 의왕·군포·안산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에 의왕역을 신설한다는 게 큰 호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수도권에 GTX가 연결된다고 하면 예외 없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 올 들어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른 수도권 대부분은 GTX와 관련이 있다.

GTX는 현재 4개 노선이 추진 중이다. A노선은 동탄~파주, B노선은 송도~마석, C노선은 수원~양주, D노선은 장기~용산 구간이다. 그러나 원안대로 된 노선은 한 곳도 없다. A노선의 북부 종점은 일산 킨텍스역이었으나 파주 운정역까지로 연장됐다. B노선은 청량리~마석 구간이, C노선은 당초 금정~의정부 구간에서 남쪽으로는 수원, 북쪽으로는 양주 구간으로 늘어났다. D노선은 장기~부천 구간에서 연장된 것이다.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에는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벌인다. 비용편익(B/C) 비율이 1을 넘지 못하면 사업을 할 수 없다. 선심성 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돈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GTX 노선이 수차례에 걸쳐 연장된 것은 사업의 경제성과 관련이 있다. 계획 노선 가운데 예타 결과 기준선을 넘어선 곳은 A노선 하나다. B노선과 C노선은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됐다. B노선은 2014년 조사에서 비용편익 비율이 0.33에 그쳤다. 정부는 수익성이 떨어지자 2017년 청량리~마석 구간을 연장했다. 그런데 2019년 조사 결과도 0.97로 기준치 미달이었다. 그러자 3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왕숙신도시 개발까지 반영했다. 그래서 간신히 턱걸이(1.0)로 사업성을 획득했다. 이른바 재수해서 떨어지고 삼수해서 조건부로 합격한 것이다. C노선도 당초 비용편익 비율이 0.66에 그쳤으나 노선 연장을 통해 2018년 기준선을 통과했다. 주민들을 위해 GTX를 연결하겠다는 당초 취지는 물 건너가고, GTX를 건설하기 위해 주민이 필요했고 신도시까지 넣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한 것이다. 경제성이 있을지 아직도 미지수다.

당초 GTX 구상은 경기도에서 나왔고 목표는 수도권을 1시간 내 생활권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서울과 수도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탈바꿈한다. 경기 주민이 서울의 인프라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 선반영해 GTX 신설역이 생긴다고 하는 지역은 서울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집값이 급등했다.

이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 수도권 이외 지역은 어떻게 될까. 지방에서도 수도권 주민들과 유사한 혜택을 받고 있을까. 수도권 주민에게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수도권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혜택을 싹쓸이하는 게 정당한가이다. GTX 건설 초기 ‘수도가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날이 온다’거나 ‘대한민국에는 수도권만 있나’라는 말이 나왔다. 이것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수도권과 기타 지역의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살기 좋은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릴 것은 자명하다. GTX는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키는 급행열차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균형발전을 역설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만들어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다음 정부에서 ‘지역발전위’로 격하되자 원위치로 복귀시킨 바 있다. 균형발전위의 존재 목적은 수도권 집중 완화에 있다. 그러나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화되는 것 같다. GTX 노선 연장을 통해 거대 수도권 공동체 탄생을 부채질한 게 이번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마도 인구 증가로 신도시를 세워야 했고 주민 편의를 위해 GTX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수도권 주민의 혜택은 좋은 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묻고 싶다. 좌초될 GTX 노선을 살리는 데 들인 노력만큼 소외받는 지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무엇인가. 지난 4년간 수도권 인구가 36만여명 증가할 때 부산·대구·광주·경남북·전남북 모든 지역의 인구가 감소했다.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할 의지는 실종된 것 같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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