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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는 원예를 위해 플라스틱 비닐이나 필름 등으로 감싼 온실을 말한다. 겨울철에 딸기·토마토·오이 등과 같은 채소, 장미·백합과 같은 화훼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은 비닐하우스 덕분이다. 여기에서 ‘하우스’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재배시설이라는 뜻이다. 하우스토마토, 하우스딸기가 말해주듯 비닐하우스는 ‘토마토 집’ ‘딸기 집’일 뿐이다.
서울 인근 그린벨트 내 비닐하우스는 대개 물류창고나 작업장으로 쓰이지만, 종종 집 없는 도시 빈민의 주거시설로도 활용된다. 건축허가가 필요 없고 철골 구조물만으로 쉽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의 가족은 한때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다. 최근 비닐하우스는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숙소로 이용되곤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주 지원 단체는 비닐하우스 거주 이주노동자를 수천명으로 추산한다.
사람이 산다고 해서 모두 집은 아니다. 집이 되기 위해서는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적정한 휴식·취침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주 농촌여성들에게 숙소로 제공되는 비닐하우스는 냉난방 시설은 물론 부엌이나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침실이나 욕실에 잠금장치가 없어 성범죄 등 인권침해에도 취약하다. 미국과 캐나다가 취침·생활 공간 분리, 충분한 냉·온수 공급, 화장실·욕실의 잠금장치 설치 등 이주노동자 숙소 기준을 엄격히 제시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0일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한파로 동료들이 다른 숙소로 옮겨간 상태에서 혼자 잠을 자다 변을 당했다. 다음달 귀국할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숨졌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250여만명 가운데 이 여성처럼 비전문·방문 취업 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43만명에 이른다. 장시간 노동, 낮은 처우 등 이주노동자의 고통이 한둘이 아니지만 한뎃잠 자는 일만은 해결해줘야 한다. 노동부는 24일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그 정도 대책으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 보호는 주거권 보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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