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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를 열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전격 보류했다. 북한군은 이에 따라 24일 최전방 지역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방송시설을 대부분 철거했다. 이달 들어 남북 간 통신선 차단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 등 대남 압박을 강화하던 북한이 갑자기 숨고르기에 나선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주민 결속과 대남 경고 등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여겼을 수도, 긴장 격화가 한·미의 반격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한반도 긴장 고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이날 ‘일단 멈춤’ 조치는 환영할 만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25일로 70년이 된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지 5년 만에 벌어진 남북 상잔의 참화는 세계 냉전의 폭발이기도 했지만 우리 민족의 더없는 비극이었다. 70년은 아무리 큰 비극과 참화라도 수습하고 해원(解寃)할 만한 시간이건만, 이 땅에서 전쟁은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3년의 열전을 치르고도 남북은 대립과 반목, 간헐적 군사 충돌을 반복하며 그 긴 시간을 보냈다. 전쟁의 상흔은 아무는 듯하다가도 다시 도지고 재발했다. 그 결과 동서 냉전체제가 30년 전에 허물어졌는데도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섬’이 되어 있다. 또 다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간 남북이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숱한 부침을 거친 뒤 남북의 두 정상은 2000년 평양에서 처음으로 만나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 정상회담을 거쳐 2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시대를 공포했다. 9·19 군사합의로 군사적 적대행위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 핵문제 해결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담대한 시도는 기로에 처해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탓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의지와 역량이 모자란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20일간 우리는 남북관계가 얼마나 약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생생히 경험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발하는 순간, ‘남북 간 적대행위 전면중지’를 다짐한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는 효력을 잃었다. 남북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반대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도래할 것으로 낙관하기도 쉽지 않다. 이는 남북 간 문제뿐 아니라 핵개발에 성공한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 중첩된 이중구조 탓이다. 미·중 패권경쟁까지 감안하면 한반도 평화라는 과제의 난도는 더 높아졌다.
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조치에 대해 정부는 일단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물론 한순간에 대화 국면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재출발의 준비를 다져야 한다. 1949년에도 남북은 38선에서 수천명이 죽고 다치는 충돌을 거듭하다 전면전을 맞았다. 그렇다면 남북이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평화를 포기할 순 없다. 남북 모두 ‘한국전쟁 70년’이라는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항구적 평화를 위한 여정에 함께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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