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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당에 있던 고목이 폭탄 터지듯 부서진 채 넘어졌습니다. 벌레가 먹어 헐거워진 부분을 보고 이유를 짐작했죠. 웅장한 거목도 속으로 썩으면 버틸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일하는 미국의 학교에서 이제 출근해도 좋다는 e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10일 전 학교가 코로나19 대처 방안으로 실시하는 코로나19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었기에 양성 통보를 받고 놀랐죠. 그 통보에는 보건당국 역학 조사관이 연락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보건소 등 어디에서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출근해도 좋다는 그 연락을 받고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실수든 고의든 코로나19에 감염된 채로 출근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 뉴스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무척 심각해 보입니다. 매일 어디서 몇 명이 걸리고,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다, 이번주가 고비다 등의 보도가 끊이지 않죠. 미국 뉴스를 보면 그런 보도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된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 반대죠. 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지난 일주일만 봐도 30만명이 넘었고, 10만명당 93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은 같은 기간 715명의 확진자가 나와 10만명당 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죠. 지난 화요일 미국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미국인은 전 세계 인구의 4%이지만 사망자는 4분의 1일 정도로 사태는 절망적입니다. 미국은 특정 지역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도할 수준을 훨씬 넘어 보도를 못하는 겁니다. 이 와중에도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대통령과 일부 관료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숨기고 최소화하기에 바쁘죠. 대통령은 별것 아니라며 대놓고 비웃었습니다. 지역 봉쇄 등 책임질 일은 주 정부에 넘기고, 대응 실패는 주 정부 탓만 합니다. 반면 백신 개발 등 성공하면 정치적 이득이 될 일에만 전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 없고 자기 코앞의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한 지도자가 어떻게 공동체를 붕괴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셈이죠.
이뿐만 아닙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아직도 기후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응은 안중에도 없고,올해 미국 서부 산불로 이어졌습니다. 맨 위 워싱턴주부터 남단의 캘리포니아까지, 몇 년에 걸친 가뭄으로 말라버린 숲은 강한 바람을 탄 불길에 잿더미가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을 처음 봤다며 경악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재민이 됐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고통이라며 이를 외면했습니다. 흑인 차별 문제도 마찬가지죠. 흑인 차별은 끝났다, 나만큼 흑인한테 잘해준 대통령은 없다고 트럼프는 주장합니다. 백인 경찰 총격으로 흑인 희생자가 나온 지역을 방문해서도 희생자와 흑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대신 경찰을 격려하는 데 방점을 찍었죠. 그러는 사이 백인 경찰의 폭력은 흑인 안위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문제 직면 대신 정치 셈법에 따라 무시·각색하며 나만 최고라 떠벌리는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뒤지나, 결과는 안갯속이죠. 트럼프가 져도 그가 연 판도라의 상자는, 뚫어놓은 수많은 나무의 구멍은 쉽게 치유될 수 없습니다. 선거에 져도 트럼프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많습니다. 그런 전망 자체가 미국판 민주주의가 얼마나 약화됐는지 보여주죠. 미국이라는 거목의 안이 얼마나 썩어 헐거워졌는지, 언제 쓰러질지 걱정됩니다.
미국의 몰락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패권을 순순히 포기한 제국은 없습니다. 전쟁이 날지, 정치외교적 위기가 날지 모르지만 그 파장은 한국을 삼켜버릴 겁니다. 그 패권국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은 조그만 구명정 하나라도 준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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