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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라는 말 자체도 모르던 시절,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는 곳에는 음치가 있을 리 없었다. 음치는 교육을 통해 낯선 음과 리듬을 배워서 불러야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찬송가, 창가를 비롯한 서양음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음치가 새로이 등장하였다. 창가, 가곡과 마찬가지로 음치도 근대적 산물인 셈이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9호에서 음악학자 이경분은 이렇게 썼다. 음악 수업에서 가창 시험을 보거나 합창을 할 때면 언제고 음높이를 잘 못 맞추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너 음치냐?’라는 장난 섞인 말이 꼭 한 번씩은 들려오곤 했지만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존재하는 이 음들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음치가 가벼운 놀림거리처럼 여겨졌다면, 반대로 소박한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은 ‘절대음감’이었다. 어떤 소리의 고유한 음높이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인 절대음감은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고 하지만, 유독 음감이 예민한 사람이 있다. 그런 이들은 통상 440㎐나 442㎐로 조율되는 기준음 A(라)음을 듣고 얼마나 더 미세하게 음정을 올리거나 내려야 하는지 감별하곤 한다. 그러나 이 기준음의 높이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기록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준음의 높이는 관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나 때로는 국제적인 협의체에 의해서 논의되기도 한다. 즉 절대 법칙이 아니라 일종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초는 음에 이름을 붙인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하고 계이름을 발명했다. 그는 성 요한 찬가의 “당신의 종이 당신의 업적의 훌륭함을 목소리로 편안히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우리 입술의 죄를 씻어 주소서”라는 가사 각 행의 첫 음절을 따와 ‘웃-레-미-파-솔-라(Ut-Re-Mi-Fa-Sol-La)’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오늘날 도레미파솔라시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편 귀도는 이 새로운 시스템의 암기를 돕기 위해 계이름과 그 구성 시스템을 손 모양 그림에 맞춰 그려두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귀도의 손에 그려진 음들은 옳은 음, 그렇지 않은 음은 허구의 음, 틀린 음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귀도의 손 바깥에도 수많은 음이 존재했으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음들은 시스템상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틀린 음으로 여겨진 것이다.

계이름과 기준음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을 둘러싼 개념이 시공간에 따라서 꾸준히 달라짐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절대음감을 타고난 능력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합의’를 얼마나 잘 체화하느냐는 문제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음치와 절대음감을 가르는 어떤 기준은 약속일 뿐 법칙이 아니다. 나아가, 누군가를 절대음감으로 만드는 것도, 음치로 만드는 것도 통용되는 수많은 시스템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의 ‘황태중임남’과 더불어 세계에는 수많은 계이름, 음이름과 음악을 이해하는 제각각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니콜라스 쿡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의 ABC가 될 수 없는 이유는 ABC뿐만 아니라 ΑΒΓ, АБГ, אבּב , 심지어는 あいう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모든 음악은 자기만의 알파벳을 갖고 있다.”

옳은 음과 존재하지 않는 음, 음치와 절대음감 등 ‘음’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수많은 음악언어가 공존하고 충돌하고 조합되는 지금, 음악은 하나의 알파벳이나 시스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기준을 한층 넓혀 음을 더욱 유연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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