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름 과실 중의 여왕.” 1930년대 한 조선어 매체가 토마토에 붙인 말이다. 당시 토마토는 감처럼 생긴 한해살이 식물이라 해서 ‘일년감’, 밭에서 난다고 해서 ‘땅감’으로 불렸다. 토마토는 그때에도 채소보다는 과실 대접을 받았다. 17세기에 조선으로 들어와 붙은 이름 또한 ‘남만시(南蠻柹)’다. ‘시(柹)’가 곧 ‘감’이다.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조선은 중국을 통해 토마토를 들여왔다. 고추·감자·옥수수 등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곧 남만을 거쳐, 중국 또는 일본을 지나 조선에 온 경로 그대로다. 조선 사람이 17세기 즈음에 접한 토마토는 감 맛이 나는 신기한 과채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재배되지는 않았다.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토마토는 엄지손가락만 한 짙은 선홍색 열매가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작물인 고추와 헷갈리는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상황이 바뀐다. 20세기에 ‘프린세스 오브 웨일스’ 등 품종이 들어오고, 토마토 농사도 궤도에 오른다. 남만시의 기억은 쑥 들어간다. 토마토는, 토마토라는 영어명과 함께 조선에서 새로이 자리를 잡는다. 나란히, “근래에 와서 우리 조선 사람도 토마토를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토마토, 즉 일년감은 여름부터는 참으로 우리들의 미각을 자극하여 마지않습니다”(동아일보 1935년 9월13일자) 같은 담론도 자랐다. 토마토수프·토마토소스·토마토샐러드 만드는 법 및 토마토케첩 사용법은 조선어 매체의 단골 글감이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바다에서 어마어마하게 잡은 정어리를 토마토소스에 담근 통조림(トマトサ─ディン缶)으로 만들어 수출하려 했다. 1938년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수출입항 제노바에 조선산 토마토정어리통조림을 수출할 정도였다. 조선총독부는 또한 동남아시아와 푸젠, 광둥에 대한 조선산 토마토정어리통조림 수출 전망을 낙관했다.
한편 현대의 케첩이란 푸젠, 광둥의 젓국을 서구화한 음식이다. 토마토 더하기 정어리란 이쪽에서 먹힐 만한 조합이란 말이다. 토마토소스에 졸인 생선은 오늘날에도 이 지역의 대중적인 음식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토마토케첩은? 1906년 대구에 정착한 일본인 오바 긴조(大場金藏)는 적어도 1935년부터 오늘날의 대구광역시 칠성동에서 토마토케첩 공장을 신나게 돌렸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섞은 ‘케요네즈’ 방식 또한 이때에 이미 보인다. 한국형 ‘사라다’에 케첩 또는 마요네즈 또는 ‘케요네즈’가 붙는 풍경이란 유래도 배경도 내력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은 아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kini.thescrew@gmail.com>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여기]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0) | 2020.07.27 |
---|---|
[숨] 다름의 조화, 음의 세계 (0) | 2020.07.24 |
[이기호의 미니픽션] 6인실 (0) | 2020.07.24 |
[사람을 듣는 시간]작가의 일 (0) | 2020.07.22 |
[기고]코로나 시대의 심리 방역, 지금이 골든타임 (0) | 2020.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