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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총선에서 스웨덴 사민당은 기념비적 승리를 거뒀다. 득표율 50.1%로 과반 지지를 얻었다.  그간 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했던 법안과 의제 추진에 강한 동력을 갖추게 되었다. 사민당을 승리로 이끈 이는 타게 엘란데르 총리다. 스웨덴식 노사정 모임인 목요클럽과 하프순드 회의를 10년 넘게 이어가 사회갈등이 깊어지기 전 대화로 푸는 문화를 남겼다.

엘란데르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67세 때였다. 당시 스웨덴 정치 지도자 대부분이 노장이었다. 엘란데르는 건강했고 당내 세력도 있어 총리직을 이어가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급변하는 시대를 앞두고 과거와 분리된 새로운 리더십이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아 총리직을 바라보는 후보가 몇 있었지만 젊은층까지 포용할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엘란데르의 의견에 모두 공감했고 사민당은 당시 교육·복지 장관이었던 42세 올로프 팔메를 새 총리로 지목했다.

과반의 의석과 내각구성권, 대중의 지지까지 엘란데르는 후임자가 정책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팔메가 총리가 된 이후 사민당은 그동안 묵혀왔던 과제를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1969~1976년, 1982~1986년 팔메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 추진된 일은 아래와 같다.

△왕정국가에서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헌법을 개정했다. 형식으로나마 남아있던 왕정의 잔재를 없애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개혁했다. △의제별 연정을 시도해 다당제를 확립했다. △고용보장을 확대했다. △실업급여와 병가수당을 확대했다. △노동조합 권한을 확대했다. △노동연금 수급자격을 확대했다. △부부별산제를 도입해 가족단위 과세에서 개인 과세로 전환했다. △복지 단위를 가족에서 개인으로 수정했다.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유급 부모휴가제를 도입했다. △여성 장관 비중을 30%로 늘렸다. 공약은 아니었으나 구성하고 보니 30%였다.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고 교육제도를 정비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공공치과보험을 도입했다. △공공어린이집을 확대했다. △아동수당을 확대했다. △지자체 보육시설을 지원했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아동권리위원회를 조직해 대책 마련에 나섰고 1979년 체벌금지법으로 이어졌다. △장애인 복지를 강화했다. △노인 복지를 강화했다. △평생교육과 노동자 교육 지원을 늘렸다. 시민 역량 강화는 팔메가 큰 애착을 둔 분야로 팔메는 스웨덴 민주주의를 스터디서클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상속세와 금융소득세를 높였다. △기업의 이익 일부를 노동조합의 주식으로 적립하는 임노동자기금을 부분적으로 실험했다. △화석에너지 비중을 줄였다. △정치적 망명과 분쟁지역 이민을 적극 수용했다. △흡수 동화주의 대신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다.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너’라고 부르는 호칭 개혁을 주도했다. 그 결과 현재 스웨덴에서는 상대를 지칭할 때 직위가 아닌 이름 또는 ‘너’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국내 정치에 대한 부분이다. 팔메는 신념 있는 발언과 외교력으로 알려졌지만 팔메 시기를 거치며 스웨덴은 개인을 존중하는 보편복지의 기틀을 다졌다. 당시 미국은 레이건이, 영국은 대처가 집권해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를 향해 가던 무렵에 시민의 지지에 힘입은 팔메와 사민당은 강력한 사민주의 정책을 펼쳤고 오늘의 스웨덴을 일궜다.

21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상임위원회 구성은 시기를 넘긴 채 아직도다.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176석, 전체 의석의 59%를 얻었다. 뉴노멀이 무엇인가 묻는 급변의 시기 유권자가 집권여당에 지지를 몰아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176석의 무게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바란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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