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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입법·검찰 전쟁’ 이면
비례대표 추천 절차 폐지에
노동법 개악 등 ‘자본 대변’
거대 양당, 과연 차이가 있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입법전쟁’과 ‘검찰전쟁’ 1라운드를 마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입법전쟁에서 국민의힘이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벌이는 등 거대 양당은 사생결단으로 대립했다. 이를 바라보는데 엉뚱하게도 떠오른 것은 통념과 달리 두 당의 공통점에 주목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의 발언이다. 노 전 의원은 2002년 TV토론에서 “개혁정당인 민주당과 보수정당의 차이는 실개천이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고 말했다. 3년 뒤 노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한 뒤 경제살리기에 나서며 보수정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가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며 반발하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보수정당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나?” 그리고 이후 보수의 지지 속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대연정에 펄쩍 뛰던 김근태 역시 보수정당과 손잡고 민주노동당의 농성을 뚫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두 당은 차이가 있고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주도한 입법에는 개혁적인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 묻혀서 주목받지 못한 것들도 적지 않다. 노동법 개악, 상법개혁 후퇴,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외면 등이 그 예이다. 검찰권력이란 화두로 난리를 쳤지만, 이번 국회는 우리 사회의 진짜 권력은 검찰이 아니라 자본과 재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자본의 이익 지키기’ ‘자본 눈치 보기’에는 두 당이 별 차이가 없었다. 대표적 산업재해인 구의역 김모군의 사망을 자기가 잘못해 죽은 것이라는 한심한 사람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하이라이트는 공직선거법이다. 두 거대 정당이 사생결단의 대립을 하던 9일 국회는 두 당의 협조 아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이동약자 교통편의 제공 의무화 등 전향적인 안이다. 문제는 양당이 여기에 기이한 내용을 슬쩍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절차의 법정화’ 폐지다. 쉽게 말해, 선거법이 규정한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민주적 선출 절차를 폐지하는 것으로, 앞으로 당원이나 유권자들에게 묻지 않고 실세들이 자기 멋대로 밀실공천을 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두 당이 야합해 비례대표의 밀실공천과 정당민주주의 후퇴를 법제화한 것이다. 이처럼, 두 당이 사생결단으로 대립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있어서는 철저히 한몸이며, 겉보기에는 적대적이지만 사실은 공생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이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소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해 왔지만 당대표 시절인 2015년 보수정당과 손잡고 오히려 이를 축소했다. 지난 총선 때도 민주당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확대시켜야 한다며 보수정당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막상 선거에서는 그 정신을 짓밟는 위성정당 창당에 함께했다. 그 결과 양당의 독점은 82%에서 94%로 오히려 심화됐고 소수의 목소리는 압살됐다. 정의당 등 소수정당은 12%를 득표하고도 2% 의석에 그쳐, 거대 양당을 찍은 한 표는 소수정당 한 표의 무려 7.8배로 계산돼 민의 왜곡이 되레 확대됐다. 이 점에서 일찍이 두 당 간 큰 차이가 없다던 노 전 대통령과 그 차이는 실개천에 불과하다던 노 전 의원의 혜안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의 어머니 등 산재 피해자 유가족들과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호소하며 추위 속에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을 격려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데 문득 올해 초 발표한 백무산 시인의 ‘겨울비’가 떠올랐다. 아마도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 내지 항의 농성장에 나서는 이야기로 짐작된다. ‘노동이 빠져나간 몸은 퇴적암이다/ 어쩌라는 거냐 문자메시지는 아침부터 부고다/ (중략)/ 현관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필요 없답니다 민주화가 되었답니다/ 민주화되었으니 흔들지 말랍니다/ 민주정부 되었으니 전화하지 말랍니다/ 민주화되었으니 개소리 말랍니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겨울비가 온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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