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파업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한 다음날인 지난 17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국민경제에 현저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공권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정부는 다음날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정례 주례회동에서 “노사관계에서 법치주의는 확립돼야 한다”며 “산업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내놓았다. 이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대행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불법 점거는 조선업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 대한 테러행위”이자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불법적인 강경투쟁”이며, 하청노조가 “임금 30% 인상 등을 원청인 대우조선에 요구하는” 것은 “하청 노사가 해결해야 할 일을 원청과 주주에 떠넘기는 막무가내식 떼쓰기”라고 주장하는 등 그의 천박한 노동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막말을 쏟아냈다. 이날 오후 정부는 기획재정부 등 5개 부처 명의의 대국민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에서 정부는 “주요 업무시설을 배타적으로 점거한 하청노조의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며, 재물손괴 등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공권력 투입과 파업노동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이 정부 개입의 기본 방침임이 드러났다.
정부의 인식에서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현실에 대한 일말의 공감도 발견되지 않는 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국가경쟁력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조선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사내하청이 가장 심한 업종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함께 저임금과 노동조건 차별, 산업재해의 위험, 고역 등으로 시달리는데, 조선업종에서 일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은 타 업종에 비해 더 심각하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파업에 나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5년간 불황을 이유로 30% 넘게 삭감된 임금을 이전에 약속한 대로 흑자경영으로 돌아선 이제는 이전 수준으로 원상회복해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의 임금 삭감분을 변상하라는 요구도,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한 임금 인상 요구도 포함하지 않은 그야말로 최소 수준의 요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하청노동자들의 이런 절박한 요구를 한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수 노동자들의 이기적 강경투쟁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렇게 매도하면서도 자유와 인권을 계속 운운할 것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모독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파업사태를 야기한 문제들은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대우조선 역시 원청의 노조법상 사용자성과 단체교섭 의무를 부정해 왔다. 이런 주장은 원청의 사용자성과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판례와도 배치된다. 게다가 대우조선은 7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산업은행이 55.7%의 지분을 가진 사실상의 공기업이다. 이는 정부가 사용자 측의 실질적인 대표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노사 자율을 내세워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해 왔음을 가리킨다.
그런 정부가 이제는 점거농성의 불법성을 들어 공권력 투입 등을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과연 정부는 공권력 투입에 나설 것인가? 정부가 그 길을 택한다면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피눈물을 강요하는 새로운 야만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지금은 이런 야만의 도래를 막기 위한 범노동자투쟁과 시민들의 연대투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노나메기재단은 연대를 위해 오는 23일 ‘희망버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