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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인생+]관계의 희열

opinionX 2022. 7. 21. 10:20
 

그런 일이 있었다. 여행클럽에서 단체여행을 갔는데 룸메이트가 코를 곤다며 방을 바꿔달라는 멤버가 있었다. 그래서 방을 바꿔주었더니 그 다음날은 새로운 룸메이트가 불만을 토로했다. 방을 바꿔달라고 했던 사람 자신이 코를 곤다는 얘기였다.

나이가 들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단점도 빨리 본다. 하지만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여행그룹을 구성할 때, 비호감인 사람까지 올 수 있으니 우리끼리만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라면 뺐을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호감인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끼리만 가서 놀자’며 자신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 안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고 형사사건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자신이 호감을 품는 사람이냐는 것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

한국인은 소그룹 성향이 강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두루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끼리끼리 그룹이 형성된다. 자신들끼리 모이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곤 한다. 이 끼리끼리 그룹의 케미는 엄청나다. 평소 알던 사람들보다 끼리끼리 그룹끼리 더 자주 모이고 더 가깝게 지낸다. 그런데 대부분 1년 정도 지나면 균열이 생기고 와해되곤 한다. 예전에 어떤 유명인을 섬여행에 데려갔는데,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에 토라져서 먼저 나간 적이 있다. 사실은 그 사람 때문에 다들 힘들어했는데, 그는 ‘사람의 격을 나눌 때는 나눠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제 당신이 나가니까 우리의 격은 그만큼 높아졌어.’

기득권이나 텃세가 별 게 아니다. 새로운 사람이 왔을 때 잠깐 보고는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재단하려드는 것이 바로 기득권이고 텃세다. 사람을 가려서 받으라는데, 들어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에게 비호감인 사람은 당신도 비호감으로 대해달라는 얘기다.

사실 여행에서 사람을 가장 가려받고 싶은 사람은 여행감독인 나다. 20년 동안 기자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고 의심하는 데에도 익숙하다. 사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 또한 나고, 사람 때문에 시달리는 사람도 나다. 하지만 나는 판단을 유예한다. 편견의 증폭을 경계해서다. 다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들어보면 감당 못할 정도의 해괴함은 없다. 바꿔 말하면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배려받는 존재인 것이다.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자신의 그릇 문제다.

내가 함부로 재단했던 사람이 여행에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사람 제법 볼 줄 안다며 자신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자신의 편견에 기대어 사람을 가리는 것은 성급한 일이었다. ‘관계의 희열’은 나의 선입견을 벗어날 때 찾아온다.

자신의 오해가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이 생긴다. 그의 단점을 부각해서 판단한 내가 부끄러웠다. 누군가가 미워보일 때는 내 이기심이 관계의 필터로 작용한 것이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다. 내가 그를 대한 방식이 나에게 되돌아온 것이니까.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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