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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중간숙주로 지목되었다. 내 비늘이 약효가 있다는 거짓된 믿음 때문에 우리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연기를 피우고 숲을 파괴하며 우리를 끌어내린 뒤 잡아 죽인다. 내 비늘은 당신들 머리카락과 같은 성분이다. 하나만 알고 죽자. 이렇게 어리석고 무지한 게 인간이라면 짐승이란 말은 왜 필요한 걸까?”
지난 8월20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천산갑으로 분장한 김한민 작가의 동물 시국선언이다. 돼지, 멧돼지, 오리, 박쥐, 뱀, 사향고양이 등 17종 동물을 대신한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선언을 마친 뒤 죽음을 상징하듯 쓰러졌다. 행사의 제목은 ‘절멸-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이었다. 질병X란 세계보건기구가 2018년 발표한 향후 대유행을 일으킬 미지의 바이러스를 지칭한다. 그런데 왜 ‘절멸’일까?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고조되어 이번주가 아마도 최고의 고비가 될 것 같다. 보건당국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까지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번 한 주를 수도권 감염확산 저지의 배수진이라 불렀고, 2.5단계의 제한조치를 발표했다. 커피점은 포장·배달만 허용되고, 음식점과 제과점은 낮 시간엔 정상영업을 하되 밤과 새벽시간에는 포장·배달만 가능하다. 실내체육시설도 집합금지, 수도권의 학원도 10인 이상 집합금지조치가 적용된다. 거리 두기 3단계가 되면, 아니 2단계에서부터 이미 우리 주변 자영업자들은 목을 옥죄는 고통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감염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약자들이다.
코로나 사태 반년. 끝이 보이지 않고 상황은 더욱 엄중해져 간다.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일인가? 인류가 겪어온 감염병 대유행은 대부분 동물에서 왔다. 그럼 쥐와 박쥐, 낙타와 천산갑 등 동물 때문인가? 아니다. 인간의 잘못 때문이다. 그저 잘 살고 있던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잡아 거래한 인간 때문에 벌어진 사달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근본원인은 동물학대라는 동물 시국선언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두 달 가까이 우리가 겪었던 홍수와 폭염,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녹아내리는 극지대 빙하 등 지구촌 기후위기 역시 코로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물순환 시스템의 붕괴와 야생서식처 파괴를 코로나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동물과 식물과 바이러스까지 다 죽인 뒤, 파괴된 자연생태 속에서 인간만 유아독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인간도 그저 생태계의 한 조각일 뿐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지하개발, 열대림 훼손, 산과 구릉을 밀어버렸던 폭력적 개발시대를 접고, 동물학대를 중지해야 한다.
“자, 우리는 간다. 당신들보다 조금 먼저.” 행사는 10개 항의 절멸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절멸’이란 ‘멸종’의 다른 말이다. 동물들을 다 죽이고 인간까지 이대로 절멸, 공멸할 것인가? 아니면 동물도 살리고 인간도 살리는 상생을 꾀할 것인가. 선택은 동물이 아닌 우리에게 달렸다. 무지몽매한 인류를 일깨우려고 찾아온 예언자 코로나 바이러스는 광야에서, 아니 당신 곁에서 외친다. 회개하라고. 서둘러라.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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