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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두 개, 거실 하나짜리’ 13평 집에서 신혼부부가 아이 둘 낳고도 살 수 있을까.
최근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행복주택(공공임대아파트)을 방문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주고받은 대화가 발단이 됐다. 당시 13평형 집에서 변 후보자의 설명을 들은 대통령이 “신혼부부에 아이 한 명이 표준이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두 명도 가능하겠다”고 한 게 논란에 휩싸였다.
이 발언이 개운치는 않다. 사실 4인 가족이 살기에 13평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다만 청와대 해명대로 이 발언이 ‘질문’이었던 아니든 야권의 “13평에 4인이 살아도 되겠다”는 취지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44㎡로 공용면적까지 합하면 통상 21평 정도에 해당한다.
‘13평’이 새삼 논란이 된 것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말대로 “가뜩이나 성난 부동산 민심”에 임대주택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덧대졌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현실은 13평이라도 입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어찌 보면 13평 면적을 둘러싼 논란은 곁가지다. 질문을 다시 해보자. 신혼부부가 아이 둘 낳고도 살기에 비좁지 않을 만큼 임대아파트가 넓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에 박수만 보냈을까. 아마 누군가는 공공임대에 너무 많은 재원을 쏟아붓는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4인 가구 기준 최저주거면적은 43㎡(13.01평)이다. 이 기준은 2011년 한 차례 상향된 뒤 바뀌지 않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임대주택은 최저면적보다 기껏해야 0.3평 정도 넓다. 그런데도 우리는 최저주거면적이 9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그나마 고시원 같은 ‘비주택’은 적용 대상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공공임대를 저소득층이 사는 혐오시설로 취급하며 나와 구별 짓는 것 또한 우리다.
이 때문에 공공임대 공급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엄청난 재원 투입도 부담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계획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엘사’(LH가 지은 집에 사는 사람), ‘휴거’(옛 대한주택공사의 공공임대 브랜드 휴먼시아에 거지를 합성한 말)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인다. 이런 구별 짓기를 없애기 위해 2007년쯤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분양과 공공임대를 섞어 짓는 소셜믹스(혼합주택) 단지가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칸막이는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의 주된 주거 정책은 공공임대주택 확대·공급이다. 중산층을 위한 ‘질 좋은 평생주택’은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이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경기도형 기본주택’ 공급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동안의 공공임대 정책이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 차원이었다면, 앞으론 집 없는 중산층의 ‘주거안전망’ 역할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 주거 정책을 책임져야 할 변창흠 후보자의 그릇된 인식이 또다시 논란이다. 대통령의 공공임대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가 한바탕 곤혹을 겪은 후라 더하다. 변 후보자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재임 시절 공공주택 입주자를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고 구의역 사고 책임을 희생자의 부주의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자질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 등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인물이 서울교통공사의 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18일 변 후보자에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라고 물으며, 심보선 시인의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이란 시를 다시 불러내기도 했다. 이 시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군’을 기리며 시인이 자필로 써서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붙인 것이다.
전염병의 시대이다. 저소득층, 장애인 등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바이러스처럼 사회 곳곳으로 스며든다.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진화하듯이, 혐오도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쑥쑥 자란다. 위기를 넘기려면 혐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에게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전쟁은 4년 넘게 지속됐다. 내년 낙엽이 지기 전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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