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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치러지는 선거가 갖는 정치적인 의미는 크다. 이런 맥락에서 두 전임 시장의 성비위로 이번 선거가 치러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두 선거 중 무게감이 실리는 쪽은 단연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힘센’ 선출직으로 손꼽히는 자리다. 박원순 전 시장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서울시장이 공석이 된 지 8개월이 넘었다. 지금 서울시민들은 ‘시장 부재(不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장 공백 사태로 시민에게 돌아올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당장 가늠하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시정 공백은 그나마 덜한 게 위안거리다. 일상이 무너지고, 감염병과 싸우느라 모두 경황이 없었으니 말이다.

서울시는 시장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으면서 굵직한 사안에 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이전부터 의견이 갈리던 서울시는 지난해 8·4 공급 대책에 담긴 ‘공공재건축’에 대해서도 ‘엇박자’를 낸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한 당일 시는 기자설명회에서 “정부의 공공재건축을 찬성하기 힘들다”고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반나절 만에 말을 바꿔 “정부와 서울시 간 이견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2025년까지 서울에 32만호, 전국에 83만6000호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한 2·4 주택공급대책 때도 서울시의 입장을 듣기는 어려웠다. 권한대행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임있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서울시장이 공석이 아니었다면 부동산 공급정책이 조금 달라졌을지는 모를 일이다.

부동산 말고도 서울시가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인구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등록인구는 32년 만에 100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 코로나19 탓에 외국인 인구가 준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기도로의 이주, 저출생과 고령화 역시 서울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돌봄 공백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중도 낙마로 보궐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올해 서울시장 선거는 10년 전 보궐선거와 판박이다. 2011년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두고 시장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치러졌고, 이번엔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치르는 선거다. 등장인물도 겹친다. 당시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금 야당 후보로, 야당 후보였던 박영선 후보는 여당 주자로 공수만 바뀌었을 뿐이다. 박 전 시장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나섰으니 완벽한 데자뷔(기시감) 아닌가.

한데 거대 서울시를 이끌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서 코로나19 이후 서울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시민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1년짜리 시장 자리를 놓고 너나없이 임기 5년 공약을 들이댄다. 시민들에게 백배사죄하며 치러야 마땅한 이번 선거의 의미를 다들 잊은 듯하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나라의 녹을 받으며 일한다는 데에만 있지는 않다. 주권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염병과도 싸워야 하는 특수한 상황 아닌가.

그나마 ‘1인 가구 주택공급 정책’ 등 대안적인 시각을 보여주며 ‘광폭 행보’를 보인 것은 시대전환의 조정훈 후보 정도다. 조 후보는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를 “부끄러운 선거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2021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닥치고 생존’”이라고 했었다. 조 후보가 완주하기를 내심 바랐지만 승산 없는 싸움에 의원직을 걸기엔 부담이 컸으리라. 조 후보가 의원직을 잃을 경우 시대전환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범여권 단일화에 합의한 조 후보는 박영선 후보와의 경선에서 패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산문집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에서 “이 세계의 타락과 불의를 보고 그것들을 향해 부단히 시비 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큰 확신 때문이 아니라 현존의 작은 요구들 때문이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시대 ‘닥치고 생존’을 위해 반걸음을 떼게 할 후보는 누구일까. 여야의 대진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우직하게 돌을 나르려는 자가 없다.

이명희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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