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옷을 벗자마자 대선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 두 곳의 조사에서 30%를 넘기거나 육박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표현대로 ‘별의 순간’을 맞았다. 이런 그를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부를 거꾸러뜨릴 영웅처럼 대하고 있다. 오지 않은 표가 많이 남아 있다며 그의 지지세 확산을 믿고 있다.
윤석열이 검찰을 박차고 나오는 과정은 영리했다.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제1야당의 핵심지역인 대구에 가서 반정권의 기치를 들어보였다.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사퇴의 변도 모범답안이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한 점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보수층이 그에게 대선 주자로 직행해주기를 바라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진정 역사에 남고자 했다면 검찰총장으로서 임기를 마쳤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맞서면서 끝까지 임기를 마친 최초의 검찰총장이 되는 게 그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대통령도 헌법기관장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며, 헌법기관장들도 제대로 법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를 바랐다. 민주주의는 서로 불편함을 참는 것임을 실천해 헌정사에 남기를 고대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했을 때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윤석열은 헌법정신이 파괴되고 있다고 했지만, 그 또한 헌법기관장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이 점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은 윤석열과 다르게 선택하기를 바란다).
정치인 윤석열의 미래를 비관할 이유도 없지만 그 앞길이 쉽지 않을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의 첫 출발 장면에는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진정 검찰 조직을 사랑했다면, 정치인으로 출발 선언을 검찰청사 안에서 하면 안 됐다. 그것은 깨끗이 사표를 낸 뒤 검찰청사 바깥에서 해야 옳았다. 또 그는 너무나 기회를 쟀고, 정치적 장치를 과도하게 안배했다. 지지 연호에 둘러싸일 것을 뻔히 예상해놓고 대구를 방문해 “고향의 포근함을 느낀다”고 한 대목에서는 오글거렸다.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비단 문빠들만은 아니다.
사람은 그가 걸어온 길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아니다. 장모의 형사사건 처리는 썩 아름답지 않다. 자신(대윤·大尹)의 최측근으로 소윤(小尹)이라고 불리는 윤대진 검사장의 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을 대하는 과정은 ‘부패완판’이다. 시민들이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검찰의 모습과 닿아 있다. 타인에게 엄격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을 감싸는 것은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나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에게 소신과 용기는 필수 덕목이지만, 그것은 자신까지 함께 던지는 그런 소신이어야 한다. 만일 그가 다른 거악을 대하듯 검찰의 비리에도 엄정했다면 그의 소신과 용기는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강하되 향기롭지 않다. “BBK의 실소유주는 내가 아니다”라는 해명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을 때처럼 시민들이 눈감지 않는 한 윤석열의 대선은 쉽지 않다.
윤석열의 지지도가 치솟은 데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했다. 최고권력자와 맞서 강단 있게 싸우는 모습에서 공정의 구현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노는 분노일 뿐, 집권까지 가능케 하지는 못한다. 정권에 대한 반감만으로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대선은 시대정신을 놓고 쟁투하는 과정이며, 시대정신은 다른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준비되었다는 사람도 실패하기 십상인 게 대통령의 길이다. 27년 검사 생활이 전부인 그에게 대한민국 국정은 너무나 버겁다. 그가 야권의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한 순간, 경쟁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석열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이다. 다음 그의 선택은 대선에 나설지, 아닐지를 결심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를 위해’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혹 그것이 대선 출마라면 그것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별의 순간은 지났고 고독과 결단의 순간이 오고 있다.
이중근 논설실장
'정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을 열며]‘우공이산’ 정치인은 어디에 (0) | 2021.03.15 |
---|---|
[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법률가의 한계와 정치의 사법화 (0) | 2021.03.15 |
[김호기 칼럼]‘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 (1) (0) | 2021.03.09 |
[이봉수의 참!]호칭의 조직윤리와 정치검찰 (0) | 2021.03.09 |
[여적]아름다운 단일화? (0) | 202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