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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부산, 두 대도시의 수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의 대진표도 속속 확정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의힘에선 지난 4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후보로 뽑혔고, ‘제3지대’ 후보로 확정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최종 단일화를 앞두고 있다. 남은 한 달간, 대선 전초전으로도 불리는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를 거머쥐기 위한 뜨거운 선거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뜨거운 선거전’이라고 써놓고 보니 겸연쩍다. 여야 정당들이나 후보들 사이의 설전과 네거티브 공방이 뜨거워질 뿐, 시민 유권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26일 예비후보 등록 이후 이어진 경선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후자보다 전자에 가깝다. 남은 한 달이 이와 다를지 자신할 수 없다.
이번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시장들의 성추행 문제에서 비롯됐다. 대선 전초전도 겸하고 있는 만큼 정권 심판이나 단일화 이슈가 부각되는 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가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슈가 다뤄지는 방식도, 대안 제시도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은 ‘누가 누가 더 많이 공급하나’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 ‘5년간 30만호’ ‘10년간 70만호’ ‘5년간 74만호’ 등 공급 일색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인지, 후보들끼리도 상대 공약을 “엉터리” “앞뒤가 안 맞아”라고 공격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되는 서울시장 임기가 1년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당초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데도 말이다. 더욱 한숨을 자아내게 하는 건 부동산 문제로 도배되다시피 하던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에 불거진 이슈가 ‘퀴어문화축제’였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가 지난달 18일 TV토론에서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도심 밖에서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시초가 됐다. 이 발언 이후 나경원·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도 차별 금지에 동의하지만 도시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시민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한다면서도, 그들에게 ‘안 보이는 곳에 있으라’고 한 것이다. 박영선·우상호 민주당 후보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서울시장 선거에 퀴어축제를 정치적 제물로 삼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권이 성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성소수자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용도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이어져 온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시장이 허가하거나 금지할 수 없다. 성소수자들의 집회만 쉽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 현실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권이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퀴어문화축제를 찬성하냐 반대하냐’로 바꿔놓은 사이,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김기홍씨와 변희수 전 육군 하사 등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해온 트랜스젠더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이를 계기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지만 정치권은 또다시 침묵·회피 태세다.
앞으로 한 달간, 후보들은 너도나도 시민의 대변자나 일꾼을 자처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는 아리송하다. 재건축 규제 완화나 재산세 감세 공약 같은 걸 보면 가진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작 차별과 배제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이들,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에서 벗어나야 할 이들, 그리고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이 다시 나왔다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문제는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이들이 시대정신을 꿰뚫는 의제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은 리더의 조건이다. 단지 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대선 전초전’이 아니라, 사회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위한 논쟁의 물꼬를 트는, 그래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가도록 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뜨거운 선거전’을 바라는 건 기대 난망일까.
김진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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