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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선배기자는 물론 부장도 편집국장도 그냥 선배로 불러.” 수습기자 시절 들은 호칭에 관한 지침은 민주적으로 느껴졌다. ‘언론사는 역시 소통이 중요하니까 경칭을 생략하는 건가?’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이고 선배의 지시는 부당하더라도 이행해야 하는 도제식 조직윤리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한국일보는 ‘형’이란 호칭을 썼는데 여자이거나 나이가 어려도 ‘형’이라 불러야 했으니 조직윤리는 개인윤리와 상반된다.

검사들도 ‘검사님’보다는 ‘형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즐겨 쓴다. ‘형님’이란 호칭을 쓰던 조직이 둘 더 있었다. 군대의 하나회와 조직폭력배. 전두환은 쿠데타에 가담한 선배장군들도 ‘형님’이라 불렀다. 조폭사회에서는 주먹이 세면 ‘형님’이고 김두한·이정재 반열에 오르면 ‘큰형님’이었다. 두 조직의 나쁜 문화는 하나회 척결과 ‘범죄와의 전쟁’으로 거의 와해됐지만 언론계와 검찰조직에는 남아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과 검찰을 핵심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둘 다 한국 사회에서 최고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제력이 없다는 점, 기수문화가 살아 있고 기수를 거치지 않은 자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점, 제 식구 감싸기 악습이 전통이 되다시피 한 점, 남을 비판하고 처벌하는 직업이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성찰이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힘 있는 두 조직은 서로 견제하고 비판하는 게 바람직한 관계 설정이지만 법조기자단을 매개로 유착하는 이들도 많다. 좀 오래 출입하면 호칭도 ‘형님’이나 ‘선배’ ‘○프로’ 등으로 바뀐다. ‘프로’는 골프를 함께 칠 만큼 친해진 관계임을 말해준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원래 독일에서 검사들의 직무 승계를 원활히 하고 통일성을 갖게 하려고 고안한 개념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퇴임 뒤 변호사를 개업해도 유지된다. ‘전관예우’로 미화되는 ‘전관비리’가 그것이다. 2003년 법무부가 검사동일체 원칙을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관계’로 바꾸고 적법성과 정당성에 이견이 있는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했으나 이를 행사하는 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최근 이의를 제기한 검사가 몇 있었는데 모두 여성 검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부고발자 구실을 하고 있는 임은정, 서지현, 진혜원, 안미현은 여검사이고, 검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연주 변호사도 여검사 출신이다. 군대에 다녀온 이들의 서열의식과 ‘의리’를 중시하는 남성중심 조직문화에 거리를 두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호칭에서도 그들은 남성 선배검사에게 ‘오라버님’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에 일사불란하게 반발하는 검사들의 행태도 애초 ‘검찰청’이라는 이름을 잘못 붙여준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검찰(檢察)’이란 말은 ‘검사하고 살핀다’는 뜻으로 일제시대 검찰에 주어진 임무였다. 언론이 경찰서 등을 도는 일선 기자들을 ‘사쓰마와리(察回り)’라고 부르는 것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검찰청은 영어로 ‘Prosecution Service’인데 업무와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 오역이다. 대부분 국가가 수사권을 분리하고 기소 서비스 기관을 두고 있는 반면 우리는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 형집행권까지 한 손에 쥐여주었으니 권한남용을 넘어 정치에 개입한다.

‘검찰독립’을 외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에 뛰어들었다. 실은 지난해 7월8일 칼럼 ‘검찰총장이 공정한 수사 대신 정치를 하나’에서도 ‘그는 이미 정치를 시작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제 대놓고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전두환의 ‘골목성명’을 연상케 하는 ‘현관성명’에서 ‘국민’이란 호칭을 두 번이나 불러냈다. 공직자는 인사권자에게 사의를 밝히는 게 마땅한데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사표’를 낸 게 아니라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대구에 가서는 “나를 품어준 고향”이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들 행태를 답습했다. 언론에 너무나 많은 검찰주의자들은 아버지가 충남 공주 출신인 그를 향해 벌써부터 ‘충청대망론’까지 써 댄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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