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당장 면박부터 할 게 틀림없다. 지난달 10일 제20대 대통령 당선 이후 25일 동안 얼마나 많은 일정을 소화했는데 무슨 객쩍은 소리냐고.
윤석열 당선인은 미·중·일을 비롯한 해외 정상들과 통화했다. 지난달 1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3일 국무총리 후보를 지명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꼬리곰탕을 먹고, 통의동 인수위 인근 식당에서 인수위원들과 김치찌개를 먹는 등 ‘먹방 소통’ 행보를 했다. 명동성당 무료급식소에서 ‘밥퍼’ 봉사를 했고,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뇌리에 남는 일은 다른 거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이전 추진이다. 윤 당선인은 당선 10일 만인 지난달 20일 직접 지시봉을 들고 새 집무실 조감도를 가리키며 집무실 용산 이전을 천명했다.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동에 따른 안보 공백과 이전 비용 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데도 강행을 선언한 것이다. 여론 수렴은 없었다. “충분히 검토했다”던 광화문 집무실 공약은 “시민에 재앙”이라는 말로 접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라는 질문에는 “공간이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의 뒤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라는 인수위 표어가 보였다.
다음, 문재인 정부와의 충돌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인사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보니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은 한 차례 무산 끝에 역대 가장 늦은 19일 만에 이뤄졌다. 그때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했다”더니 회동 3일 만에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을 두고 또 충돌했다. 인수위가 “직권남용 소지가 다분한 임기 말 알박기 인사”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에 인수위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인수위는 “청와대가 감정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했지만, 애초 정당한 선임 절차를 거친 상장기업 대표 거취를 거론하면서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처사” “내로남불”이라고 감정적인 언사를 써가면서 비판한 것은 인수위 쪽이다.
윤 당선인 측의 부적절한 언행들도 도드라졌다. 인수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의 간담회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 처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독립수사기관인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이다. 앞서 ‘윤핵관’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김오수 검찰총장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 데 이어 부적절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권 의원은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면서 “문 대통령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 사면을 남겨놓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김용현 인수위 청와대이전TF 부팀장은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문 정권이 안보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고 했다. 문제점을 지적하자 다른 문제 사례를 들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피장파장의 오류다. “인수위는 점령군이 아니다”라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 와중에 차기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연일 비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선인 시기는 윤석열 정부의 향후 5년 국정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하지만 그 첫 행보가 국민여론이 갈린 집무실 이전 이슈였고, 방식은 일방적이었다. 윤 당선인 측은 정권교체라는 단절적 측면만 강조하면서 기존 정부와 불협화음을 냈다. 인수위 내에서 잡음이 나오고, 오만에 빠진 듯한 모습도 보였다. 국정 밑그림을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시간에 말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황홀경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 성공하는 대통령의 첩경”이라고 했다. 25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윤 당선인이 취임 이후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답변이 계속 절반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민심은 오롯이 윤 당선인에게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 통합과 협치, 문제 해결의 리더십, 새 국정비전을 보이는 대통령의 모습 말이다. 더 이상 내로남불이나 피장파장이라고 우기는 건 통하지 않는 시간이 온다.
김진우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