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키보드 워리어에 빠진 게
민주당으로서는 고맙겠지만
한국 정치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모두가 대가 치러야 하는 게 씁쓸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부족하던 시절의 일이다. 심야의 지하철 환승역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이 양쪽 목발을 짚고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다가, ‘꽈당’ 소리가 날 정도로 넘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그를 부축해 일으켰는데,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이골이 난 그의 화난 말투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가 제대로 귀가했는지는 모르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계속된 발언들이 의아하다. 시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가능하지만, 많은 이가 ‘오죽하면 저렇게 할까’라며 공감한다. 그런데, 유력한 정치인이 그 바쁜 와중에 그분들과 설전을 벌인다. 성별, 장애, 성적 지향 등에서 소수자인 사람의 수는 의외로 많다. 이 대표의 인생사를 알 수는 없지만, 어느 항목에서도 소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수자의 경험이 있어야만 소수자에게 공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여기에서 심각한 장애가 있다. 여성의 권리를 향한 그의 태도에서도 드러난 공감 능력의 결여는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사고의 논리적 귀결이거나 그것에 선행하는 원인이다.
능력을 바탕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사회의 효율성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평등을 너무 강조하면 생산성이 하락하고 배려가 필요한 이들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와 동시에 얼핏 비효율적이고 자원의 분배를 왜곡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복지정책의 필요성 또한 넉넉히 증명되었다.
능력에 따른 배분이 천부인권처럼 보장되어야 할 금과옥조인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 따위의 누가 보아도 불공정한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개인이 어떤 능력을 타고나는 것도 불공평하고 우연한 것이다. 능력은 어쩔 수 없이 유전자에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것이 축하받을 일인지는 모르나, 자신이 잘한 것은 아니다. 노력은 다를까? 그것이야말로 순수하게 자신이 보상을 받아야 할 요소인 게 맞는가? 성실히 노력하는 태도의 바탕이 되는 체력, 의지력, 성향조차 유전적으로 그리고 부모의 경제적 자본이나 문화적 자본에 크게 빚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게으르다고 탓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나 또한 자주 게으르다. 사람이 그럴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내하다가 그가 맡은 일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면 대안을 찾으면 된다.
이 대표가 다닌 대학의 철학과 교수였던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계약의 원리를 깊이 파고들어 각별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는 사람들이 ‘정의의 원칙’을 합의할 때 ‘원초적 입장’에 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초적 입장’의 중요한 요소는 ‘무지의 베일’이다. 그 베일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인생 계획, 자신의 가치관, 자신이 속한 세대 등을 알 수 없다. 롤스는 이러한 ‘원초적 입장’에 서서 ‘정의의 원칙’을 합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경제·능력·신체 등에서 어떤 불행에 빠질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최악의 경우에도 인생 계획을 위한 기본적 조건은 확보될 수 있는 선택을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관점에서 장애인, 약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인류는 오래전부터 그런 흐름을 따르고 있다.
세상의 어떤 영역보다도 난도가 높은 것이 정치이기 때문에, 이 대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젊은 나이에 정치를 너무 잘 아는 게 신기했다. 그가 만일 공감 능력마저 있었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진땀을 흘렸을 것인데, 지금은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기댈 언덕이 되었다.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이 흘렀을 텐데, 이 대표의 업적은 무엇일까? 여전히 하버드대 졸업생이라는 개인적 성취 외에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늘 개인적인 싸움만을 하고 있다. 게다가 왜 하필 소수자를 상대로 유난히 흥분하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좋기도 하다. 그로 인해 논쟁이 깊어지고 새롭게 문제가 조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기대가 크다. 개인적 경험과 성향에 기초한 진부한 사고를 넘어서서, 공동체 전체의 갈 길을 깊이 고민해 주기를 원한다. 이 대표가 엘리트주의와 키보드 워리어에서 한 뼘도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민주당으로서는 고맙겠지만, 한국 정치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결국 모두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조광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