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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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평생 갑으로 살아온 60대 남성이 구조적 성차별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A씨의 경험담을 전한다. 직장맘인 A씨는 퇴근시간이면 귀갓길을 재촉하기에 바쁘다. 맞벌이 부부지만 으례 A씨가 먼저 귀가해 아이들을 챙기고, 배우자는 사무실에서 일을 좀 더 한 뒤 퇴근하는 일상이 고착화돼 있다. 어쩌다 A씨가 야근·회식으로 늦는 날이면 미리 일정을 조율하고 양해를 구한다. 반면 배우자의 경우 이런 절차를 굳이 거치지 않는다. A씨는 늘 혼자 시간에 쫓기며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하는데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학교 과제·준비물 챙기기, 간식·식사 준비, 하다못해 아이들 자가진단앱 기입까지 A씨가 하는 부분이 더 많다.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가사 분담은 가정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오롯이 부부가 육아를 감당한다면 (특히 여성에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A씨는 긴 갈등과 고민 끝에 지난해 말 10년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A씨도 안다, 이 문제가 배우자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A씨의 배우자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부모의 부모로부터, 지인들로부터 비슷하게 설정된 ‘관계’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구시대 질서와 가부장 문화가 잔존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소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보일지언정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억울하면 A씨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았냐고? 그런 논리라면 여성 경력단절, 유리천장, 저출생, 인구감소 문제 등까지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과 제도로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이는 성별을 넘어 인종, 종교, 사상, 계층 등을 막론하고 통용된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그렇다고 해서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관행, 문화, 사고의 틀은 견고하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개인적 불평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며, “집합적 남자, 집합적 여자 문제에서 개인 대 개인 문제”로 바라보는 게 약자의 권리 보장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성차별의 원인을 일부 개인의 부족함과 편견에 의한 것으로, 그에 대한 해법을 개인에 대한 피해 구제 차원으로 치환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인가.
여성이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정황은 넘쳐난다. 2020년 한국의 국가성평등지수에 따르면 완전한 성평등 상태를 100점으로 할 때, 전체 성평등지수는 74.7점에 그친다. 특히 의사결정 분야는 37.0점, 국회의원 성비는 22.8점, 관리자 성비는 24.8점이다. 중요한 정치적·정책적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여성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대학 진학이나 전문직 자격시험 등의 높은 합격률을 보면 유독 여성들이 무능해서라고 보긴 어렵다. 유리천장, 고용·직장에서의 성차별,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가사노동시간(31.3점), 육아휴직(32.4점)에서의 성평등 수준 역시 낙제점이다. 반면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톱이다.
공직자 인사검증 업무에 관여했던 한 인사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위공직자 후보는 인사검증을 위한 검증 동의를 사전에 내야 하는데, 유독 여성 후보들은 배우자들이 검증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후보 지명을 고사한 사람도 여럿 된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곱씹어 볼 이야기다. 개인 대 개인에 초점 맞춰 시정하기엔 보이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차별과 불평등이 층층이 고착화돼 있는 구조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직장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노동계에서 성평등 모범 단체협약안을 따로 내놓는 이유다. 헌법이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신설에 이어 성인지 예산을 떼어 북핵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을 배제·소외시키는 인식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윤 후보를 보면 단순히 2030 남성 유권자 표를 얻기 위한 립서비스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아이들 유행어를 빌린다면 그야말로 대선 후보가 집합적 여성을 향해 ‘어쩔티비’ ‘우짤래미’ 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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