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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기시감이 엄습한다. 참여정부 시절 2004년을 기점으로 집값이 폭등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국정 동력이 급속히 소진한 때다. 민생의 핵심인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정권은 순식간에 위기에 빠진다. 당시 여당이 2007년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의 참패를 당한 데는 분명 ‘부동산 실패’도 자리하고 있다.

급기야 여권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트라우마’가 소환되고, 사과에 인색한 여당 대표가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작금의 부동산 민심이 사납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젠가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가 정치’라고 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며 변곡점을 맞이한 때는 어김없이 ‘부동산’이 있었다. 집값이 폭등할 때 지지율이 급락했다. 80%대까지 오르내린 지지율이 처음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8년 9월이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은 집값 문제가 ‘남북 평화’ 성과마저 밀어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사상 최저인 40%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지난해 12월도 집값 폭등과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쟁점화됐던 때다. 4·15 총선 이후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국정 지지율이 속절없이 꺾여 다시 50%선을 위협받고 있다. 거래허가제까지 도입된 ‘6·17대책’에도 불구, 집값은 잡히지 않고 전셋값 상승 등 부작용이 도드라지면서 민심이 격동한 결과다.

“부동산 가격 충분히 잡을 수 있다”(취임 100일 기자회견), 3년이 지났다. 부동산 시장은 완전 딴판이다. 문 대통령 취임 당시 6억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9억2500만원으로 올랐다. 중위 전셋값은 4억6192만원으로 상승했다. 서울의 어지간한 아파트는 9억원을 초과하고, 전셋값은 4억원을 넘는다는 얘기다. 21차례의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규제지역을 피한 ‘풍선 효과’가 발생하면서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값도 역대 최고로 올랐다. 아무리 다른 통계를 들이댄들 역대 정부 중 단기간 내 최고로 집값을 올린 정부,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6·17대책’마저 한 달도 되지 않아 효력을 상실했다. 집값 상승은 계속되고 ‘뒷북대책’의 다기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부동산을 잡을 능력이 없다’는 인식만 두텁게 했다. 이제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투기심리만 전염시키고 있다. 2017년 ‘8·2대책’ 직후 당시 김수현 사회수석은 “참여정부 기간 크고 작은 대책을 17번이나 발표했음에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명백한 실패다”라고 했다. 그 잣대를 대면 21번의 크고 작은 대책을 쏟아냈음에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여당은 보유세 강화와 공급 확대 등의 22번째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추가 대책이 발표되기도 전인데, 리얼미터의 3일 조사에서 49.1%가 ‘효과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부동산 정책이 신뢰를 잃었다는 방증이다. 실제 쉼없이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게 앞으로 계속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판이다.

청와대 참모들과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실상은 부동산 정책 불신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이들 다주택자의 부동산은 ‘12·16대책’ 이후 6개월 새 평균 2억원 이상 올랐다. 다주택 투기 규제에 집중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내부에서조차 씹히니 국민이 신뢰를 보낼 리 만무하다. 그중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서울 반포 아파트 대신 12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청주의 집을 매도하기로 한 것이 발신한 시그널은 최악이다. 3년 새 70%가 오른 반포 아파트를 지키면서, 부동산 정책을 희화화시켰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똘똘한 한 채’를 챙기면서 ‘강남 불패’를 보증한 꼴이 됐다. 마침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주택자의 세부담 완화 기조 유지”를 천명했다. 추가 대책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보유세 강화가 ‘똘똘한 한 채’는 비켜갈 것이란 얘기다.

부동산 대책은 심리전 성격이 강하다. 부동산 정책이 불신의 늪에 빠지면 백약이 무효인 순간이 온다. 경계선에 서 있는 지금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칠 게 없어진다. 실패를 인정해야 ‘부동산 가격을 잡고 주거 안정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가능하다. 한 번 더 집값이 폭등하면 정권재창출이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권이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필시 부동산이 정권을 잡는다.

<양권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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