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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클리대학의 동쪽 언덕엔 몇 개의 연구소가 있는데, 그중에 세계적인 수학연구소 MSRI가 있다. 금문교의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2007년에 이곳의 학회에 참석했더니, 발표순서에 짐 사이먼스라는 이름과 함께 난해한 강연 제목이 붙어있었다. 지나가던 연구소장 아이젠버드 박사에게 물었다. “이분이 ‘그’ 사이먼스인가요?” “물론이죠.”

제임스 사이먼스는 1962년 버클리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하버드와 MIT 교수를 거쳐 스토니브룩 수학과의 초대 학과장을 지냈다. 20세기 미분기하학과 수리물리학의 주요 업적인 천 사이먼스 불변량의 개념을 창안한 이 저명한 연구자는 1970년대 말에 투자업계에 진출했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창업하더니, 2000년대에는 연간 개인 수입 랭킹 세계 1위를 내리 몇 년 차지했다.

그의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수학자와 물리학자 수백명은, 정치적인 요소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학적 방식으로 만든 모델만을 사용해서 투자한다. 모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질 것으로 보이던 2008년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그의 메달리온 펀드는 연 84%의 수익률을 내며 수학적 방법의 힘을 입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파생상품과 금융수학에 돌리며 수학적 방법에 대한 맹신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통제 수단의 법적 미비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안전장치의 내재화 부재 등이 더 큰 원인이지 않았을까.

연구자 사이먼스는 1970년대 말에 사라졌지만, 수학을 사랑하는 투자자 사이먼스는 수학계에 계속 출몰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버클리 MSRI의 이사를 기꺼이 맡았으며 오랜 세월 다양한 수학강연과 학술대회를 후원했다. 자신의 환갑잔치도 기하학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공간 부족에 시달리던 수학연구소 MSRI에 수백만달러를 기부해서 자신이 존경하는 천 교수의 이름을 딴 ‘Chern Hall’을 증축했는데, MSRI는 새 건물 안에 사이먼스 강당을 만들었다.

그의 강연 전날에 학회 참석자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간단한 인사말을 요청받은 사이먼스는 마이크를 잡더니, 수학의 진보에 관련한 MSRI의 역할을 돕는 취지로 1000만달러를 기증하겠다고 발표했다. 참석자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미국에서 수학 관련한 단일 기부로는 역대 최대인 것 같다고 했다. 이 기록은 곧 뒤집혔다. 같은 해에 그는 스토니브룩대학에 ‘사이먼스 기하학 및 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의 수천만달러 기부로 2010년에 문을 연 연구소는 빠르게 세계적인 연구소로 자리 잡았다.

다음날 그가 30년 만에 하는 수학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청중이 운집했다. 처음 학회에서 강연하는 젊은 학자처럼 흥분한 그는 제한된 시간을 훨씬 초과했는데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못했는지, 학회 종료 후에 추가 강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휴식 시간 중에 다가가 물었다. “수학강연은 조금 의외네요. 더구나 최근 연구잖아요. 연구할 시간이 있긴 한 건가요?” “나이를 먹으니 첫사랑인 수학에 대한 애정을 떨치기 힘들어요. 이제 회사 일은 도와주는 이들이 많으니 매주 하루 이상은 수학 연구를 하기로 작정했어요.” 이게 인연이 돼서 몇 년 뒤에 2014년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의 대중강연을 부탁했다. 즐겁게 수락한 그는 4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했다. 자가용 비행기로 방한한 그의 여비를 어떻게 했냐고? 물론 강연료도 여비도 주지 못했다.

예정된 시간을 초과하면서 기술적인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강연을 참을성 있게 듣는 건 쉽지 않다. 2007년 당시 69세이던 그의 데뷔 아닌 데뷔 강연을 많은 청중은 인내심을 갖고 들으며 수학자 사이먼스의 귀환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즐김의 수준에 다다른 문화적 성숙도가 참 보기 좋았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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