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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에서 인공지능(AI)이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의 세계’는 AI 소설가 비람풍이 김태연 소설감독의 기획과 연출 아래 쓴 장편소설이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미술품 경매사인 크리스티의 미국 뉴욕 경매장. 작품명 ‘에드몽 드 벨라미’란 초상화가 출품됐다. 경매사의 작품 소개가 끝나자 경매 참여자들 사이에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결국 43만달러에 낙찰됐다. 추정가의 40배를 넘어선 것이다. 미술계는 깜짝 놀랐다. 낙찰가 때문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인공지능(AI)이 그린 ‘수준 높은 그림’이어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AI는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다. 갖가지 이름의 첨단 제품으로 친구이고 반려자며 도우미 역할을 한다. 과학이나 산업 분야만이 아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AI는 활동 중이다.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와 소설을 쓴다. 소설의 경우 2008년 러시아에서 단행본이 나왔고, 2016년 일본에선 문학상의 본심까지 올랐다. 국내에도 ‘AI 소설공모전’이 열린다. ‘AI 예술가’들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거래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25일 AI가 쓴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AI 작가’의 이름은 ‘비람풍(毘嵐風)’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우주가 만들어질 때나 파괴될 때 휘몰아친다는 폭풍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AI 소설이 초단편인 데 비해 500여쪽의 장편이다. 수학자와 정신의학자·스님 등이 등장인물로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규명해본다는 내용이다. 물론 비람풍이 모두 쓴 것은 아니다. 소설가이자 공학도인 김태연이 ‘소설 감독’이란 이름 아래 주제와 소재·배경·캐릭터 선정 등 핵심적 이야기 틀을 만들었다. 인간이 감독했다는 점에서 비람풍은 ‘대필 작가’ 수준을 조금 넘어선 듯하다.

다른 분야와 달리 문화예술에서의 AI 활동은 더 놀라움을 안긴다. 사고력과 직관력·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예술활동이야말로 인간의 전유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AI 예술가’는 우리에게 까다로운 여러 질문을 던진다. AI의 소설과 그림·음악은 문화예술 작품인가 아닌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예술활동은 인간만이 하는가, AI가 인간 예술가의 맞수가 될까 조력자에 그칠까, 과연 인간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나…. 근원적인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도재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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