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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국민투표

opinionX 2022. 4. 29. 09:29
 
1975년 2월 12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유신체제와 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확히 53년 전인 1969년 4월28일,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바로 전날 실시한 개헌(지방행정 및 상원 개혁안) 찬반 국민투표에, 드골 자신의 신임 여부를 결부시킨 결과였다. 유권자 52.4%가 반대함으로써 드골의 마지막 승부수는 빗나갔다. 1958년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사퇴할 때까지 드골은 11년 동안 모두 다섯 번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드골은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민투표를 실시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해나갔는데, 마지막에 발목이 잡혔다.

바로 그해 한국에서도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4년 중임제의 재선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추가 집권을 위해 3선 연임 개헌안을 국민투표(10월17일)에 부쳤다. 박 전 대통령은 네 번(처음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1975년 마지막 국민투표에서는 유신체제와 대통령 재신임 여부를 함께 물었다. 역대 여섯차례의 국민투표 중 유일하게 개헌과 무관한 투표였다. 관권을 총동원한 끝에 찬성 73.1%로 재신임됐지만, 4년 후 비극으로 끝났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최근 6·1 지방선거 때 ‘검수완박’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 72조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과연 검수완박 법안이 여기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그렇다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것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응수했다.

국민투표는 국민에게 바로 뜻을 묻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방식으로, 개헌 등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드골과 박정희의 사례에서 보듯 통치자의 권력 강화나 정치적 위기 모면 수단으로 이용된 예가 적지 않다. 따라서 그런 의심을 피하고자 한다면 심사숙고한 후 국민투표 부의를 거론하는 게 옳다. 오죽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체회의도 열지 않고 바로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을까. 국민투표법 일부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후 개정하지 않은 것조차 모르고 이런 문제를 거론하다니 당혹스럽다.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게 정치는 아니지 않은가.

윤호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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