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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여적

[여적]나이 계산법

opinionX 2022. 4. 12. 09:37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1일 법적 및 사회적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이행 차원이다. 사진출처 윤석열 당선인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한국인들의 나이 집착은 유별나다. 조금만 친해지면 나이를 먼저 묻는다. 한 살 차이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높임말과 반말 서열이 갈린다. 그런데 그렇게 나이를 따지면서도 계산법은 들쭉날쭉이다. 나이 계산법은 세 종류나 된다.

먼저 ‘세는 나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친다. 12월31일 태어난 아기도 하루만 지나면 두 살이 된다. 태아도 사람으로 간주하는 인본주의라는 주장이 있지만, 근거가 약하다. 그보다는 ‘0’이라는 숫자 개념이 없을 때 생긴 농경문화의 흔적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다. 19세가 되는 해에 징병검사를 받도록 한 병역법, 만 19세가 되는 해의 첫날부터 술·담배 구입을 허용하는 청소년보호법에서 이 계산법을 쓴다. ‘만 나이’는 생일이 지나야 한 살 더 먹는 방식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사용한다. 일본은 1950년대, 중국도 1960년대에 ‘세는 나이’ 대신 ‘만 나이’를 법적·사회적 기준으로 바꿨다.

한국에서만 ‘세는 나이’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촘촘한 서열의 잣대로 기능한 탓인 듯하다. 일제강점기 군대 서열문화가 학교에 도입되고 독재정권기에 교내 권위주의가 강화되면서 나이에 순종하는 폐습이 생겼다(오성철 서울교대 교수)는 해석이 그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장유유서는 강조했지만 친구와 나이 차는 중요시하지 않았다. 절친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긴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도 다섯 살 차였다. 스무 살쯤 많은 이가 상대방을 붕우(朋友)로 아끼기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국의 세 가지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 최근 사례처럼 단체협약 임금피크제의 56세가 ‘만 56세’인지 ‘세는 나이 56세’인지를 놓고 대법원 재판까지 가는 소모적인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계산법이 일상에서 정착되면 기존 나이보다 한두 살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기왕이면 나이 따지는 문화도 줄었으면 좋겠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상대방 나이를 대놓고 물어보는 일이다.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나이가 서열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가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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