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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외교관 직급인 대사는 한자로 ‘사(使)’자를 쓴다. 의사·목사에도 쓰는 스승 사(師), 판검사에 붙이는 일 사(事), 전문·기술직에 가장 널리 달리는 선비 사(士)와 달리 국가·국왕이 보낸 대리자·파견자의 뜻이 담겼다. 정식 명칭은 ‘특명전권대사’이다. 1961년 비엔나 협약에 따라 대사와 가족은 주재국 법률과 공권력을 적용받지 않는 면책특권이 주어진다. 배우자와 자녀까지도 민간 외교사절로 지낼 수 있게 보호막을 쳐준 것이다. 포털 검색창에 ‘대사’를 치면 며칠째 압도적으로 뜨는 말이 있다. ‘벨기에 대사 부인’이다.
중국계 벨기에인 쑤에치우 시앙(63)이 한국인의 뺨을 또 때렸다. 지난 5일 서울 한남동 독서당공원에서 빗자루가 몸에 닿았다고 환경미화원(65)에게 두 차례 손찌검을 한 것이다. 시앙은 공원 구석에 놓아둔 미화원의 도시락도 발로 차고 짓이겼다. 2주 전엔 의자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건드렸다고 이 미화원 얼굴에 휴지를 던졌다고 한다. 시앙은 지난 4월 이태원 옷가게에서 실랑이하다 여직원 뺨을 때려 공분을 산 적 있다. 대사가 공개 사과했으나, 경찰에서는 조사만 받고 처벌은 받지 않는 면책특권을 행사해 ‘사건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곤 석 달 만에 산책 다니던 공원에서 폭행이 재연됐다.
한때 중국 누리꾼들이 ‘한국인’이라고 억지부렸지만, 시앙은 1958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서울에서는 중국 전통옷을 입고 태극권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벨기에에도 이번 사건은 곧바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벨기에 국적 줄리안이 그쪽 언론사에 제보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이 사건은 핫뉴스로 다뤄졌다. 국제적인 ‘갑질·밉상’이 된 것이다.
소피 윌메스 벨기에 외교장관이 7일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대사 부부는) 돌아오라”고 했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유럽이 전했다. “주재국 대사로서의 책임과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언급하며 내린 본국 소환령이다. 석 달 전 폭행 때 내린 ‘여름 귀국’ 명령을 더 당긴 것이다. 국가의 체면과 의전을 중시하는 외교가에서 얼마나 화가 나고 불안했으면 그럴까 싶다. 사필귀정이고, 행한 대로 거두는 업보다. 굿바이 시앙.
이기수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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