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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를 사적 공간, 즉 사저는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사저를 신축하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호화 주택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이 문제일 때도 있었지만 거의 다 정치공세였다. 지나고 나면 사라질 주장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사저 논란을 촉발시킨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5공 철권통치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가면서 막대한 국고를 들여 연희동 자택을 보수해 ‘연희궁’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인근 연희동 자택을 조금 손만 보고 들어간 것은 그를 반면교사 삼은 결과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택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듣고 집을 신축했음에도 비판을 받은 케이스다. IMF 외환위기를 불렀다는 비판에서 피할 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호화 사저 논란의 진짜 효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DJ의 동교동 자택 신축을 두고 당시 야당은 자택 설계도면까지 입수·공개하며 호화 저택 공세를 폈다. 채광을 위해 건물 안에 당시에는 생소한 ‘sunken garden(뜨락정원)’을 만든 게 구설을 불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봉하마을에 사저를 지었다가 아방궁 공세에 시달렸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봉하마을에 ‘노무현 타운’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주장을 방조한 이명박씨는 아들 명의로 도곡동에 사저용 땅을 매입했다 배임과 부동산 실명제 위반, 편법증여로 수사를 받았다. 결국 애꿎게 경호실 관계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사저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경남 양산에 농지가 포함된 부지와 주택을 매입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이 형질변경 등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정권 심판론 등을 키우기 위한 정치공세가 분명한데 문 대통령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대응해 논란을 키웠다. 적법한 일이라고 강조하려던 의도와 달리 공방에 엮인 셈이 됐다.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조용한 삶을 원하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우리는 언제쯤 대통령의 사저가 정치공세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갈수록 협량해지는 한국 정치의 단면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용욱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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