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슈퍼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음료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갔더니, 문짝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포켓몬빵 품절.’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마스크가 없다고, 최근에는 자가검사키트가 없다고 고지한 자리에 붙어 있다. 손님들이 “그거 없느냐”고 하도 물어대니 대답하기 힘들어 붙여놓은 쪽지일 터이다. 그런데 그 품목이 예전의 ‘포켓몬빵’?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제빵회사 샤니는 경쟁사인 삼립의 ‘국진이빵’에 맞서 ‘포켓몬빵’을 출시해 대히트를 기록한다.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덕분이었다. 특히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띠부띠부씰 스티커’는 빵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 빵은 ‘디지몬빵’ 같은 다른 캐릭터의 빵으로 대체됐다. 샤니와 삼립이 한 회사가 된 SPC삼립이 최근 포켓몬빵을 다시 만들고 있다. 포켓몬 게임의 인기 덕분에 다시 추억의 그 빵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16년 만에 돌아온 포켓몬빵이 띠부띠부씰과 더불어 다시 한번 과거의 인기를 재현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스티커를 획득했다고 자랑하는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희귀 스티커를 팔고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SPC삼립은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편의점 수요에 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옛날 동네 슈퍼나 문방구에서 포켓몬빵을 사먹던 초등학생들이 30대가 됐다. 자기가 번 돈으로 상품을 소비하며 추억을 더듬고 있다. 199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여고생이자 국가대표 펜싱 선수인 나희도가 ‘희도빵’을 먹고 스티커를 수집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10·20대 사이에서는 포켓몬 빵과 스티커 열풍이 재연되고 있다. 어렵사리 구한 스티커에서 그들은 또 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줄서서 사는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나 포켓몬 빵·스티커는 같은 것이다. 추억의 빵과 스티커 덕분에 30대는 10대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며 말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 ‘희도’가 딸에게 하듯이. 포켓몬 빵과 스티커가 갈수록 줄어가는 세대·가족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소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윤호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