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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또 인간만큼 고독한 존재는 없고, 인간이 외롭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있어 외로움은 우리가 매일 먹는 물이나 밥과 같고, 이 외로움을 이해하는 데서 우리 삶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펼쳤다. 인간은 역시나 외로운 존재이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최악의 고독은 한 사람의 벗도 없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2013년부터 방영되고 있는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커다랗고 귀여운 곰 인형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윌슨이다. 초창기 출연한 가수 김태원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윌슨은 혼자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출연자들이 시시때때로 말을 걸고 함께 노는 애착 인형이다. 곰 인형 윌슨의 할아버지, 원조가 배구공 윌슨이다. 2001년 개봉한 미국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온 것이다. 윌슨은 유명 스포츠용품 브랜드로 공에 표기된 이름이다.
영화에서 배구공 윌슨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 척(톰 행크스)의 친구로 4년간 곁을 지킨다. 척이 공 윗부분을 잘라내 나뭇가지를 꽂고 피로 이목구비를 그려 사람 얼굴처럼 꾸민 모습으로 나온다. 윌슨은 화풀이까지 받아주는 최고의 말벗이 되며 극한의 외로움을 겪는 척의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 것이다.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윌슨을 바다에 떠내려보내고 “미안해”라며 오열하는 대목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화 소품으로 쓰였던 이 배구공 윌슨이 최근 해외 경매에서 약 3억6000만원에 팔렸다. 낙찰 예상가보다 4~6배 높았다고 한다. 한낱 배구공이지만, 인간의 외로운 삶을 지탱해준 힘이자 지옥 같은 무인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함께 소통하며 고락을 나눈 친구로 빛났던 윌슨의 가치가 눈에 띈 모양이다. 장기간 코로나19 사태를 버티며 사람들은 갈수록 어렵고 외로워지고 있다. 나의 윌슨은 어디에 있을까. 힘들어도 계속 찾아봐야겠다. 그래야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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