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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비료대란

opinionX 2022. 5. 4. 09:39
 
인도 펀자브주 암리차르 외곽의 기차역에서 지난달 30일 한 노동자가 비료 포대를 하역하고 있다. 암리차르/AFP연합뉴스

 

인류가 80억명에 이르러서도 ‘맬서스 함정(Malthusian trap)’에 빠지지 않은 것은 인공비료 덕분이다. 1908년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질소 비료를 개발하면서 인류는 식량 걱정을 크게 덜었다. 그런데 비료 사용=식량 증대라는 등식이 깨질 위기가 닥치고 있다. 비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 농가들이 비료 사용을 줄이고 있어서다. 세계은행의 비료가격지수는 지난 3월 237.6으로 전년 동월의 2.3배에 달한다.

비료 공급난은 비료의 3요소인 질소·칼륨·인산 모두에 걸쳐 있다. 작물 생육에 가장 중요한 영양소인 질소 비료는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합성암모니아로 만든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약 50% 급등했다. 작물을 튼튼하게 하는 칼륨은 광산에서 채굴한다. 세계 생산량 1위인 러시아와 2위인 러시아 동맹국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35%가량의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 작물의 단백질 합성을 돕고 단맛을 높이는 인산은 중국이 최대 생산국인데, 가격불안을 이유로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 인산염을 자원무기화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료를 덜 쓰면 아시아에서는 약 5억명분, 서아프리카에서는 1억명분의 곡물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 ‘유럽의 곡창’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밀 파종시기를 놓친 것과 맞물려 세계 식량위기가 커질 수 있다. 기근은 정치 불안정을 유발한다. 2007~2008년 식량위기는 방글라데시와 멕시코 등 30개국에서 폭동을 불렀다. 2010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비료 가격 폭등을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부자 나라들이 코로나 백신을 싹쓸이한 것처럼 식량 사재기를 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가난한 국가와 사람들을 영양실조로 내몰지 말라는 경고이다.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100억명에 이른다. 식량 공급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파국을 맞는다는 맬서스 함정에 새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생물을 이용해 식량을 증산하는 대체농업 스타트업들이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비료 없는 세상도 생각해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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